ADVERTISEMENT

기득권층 대반격설/조직적인가 단발성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조각 인사파동때와 「냄새」 비슷”/대세는 “YS에 덤비기는 한계”
기득권세력은 과연 반격중인가. 개혁세력을 겨냥한 역풍은 실제로 불기 시작한 것인가.
정치권을 포함한 공직사회 전체가 『밤새 안녕하시냐』는 말로 아침일과를 시작하는 요즘이다. 14일 최형우총장이 전격적으로 사임하자 민자당 주변에는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반격표적 1번은 청와대의 P씨,2번은 대통령의 친인척 K씨,3번은 최형우사무총장이었다. 그런데 경원대 부정입학사건이 돌출하는 바람에 3번 표적이 1번으로 바뀌었다.』
「표적」을 작성한 당사자로 지목받는 쪽은 물론 TK인맥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세력이다. 표적론은 6공 1기의 장·차관급,국회의원 다수가 비밀리에 내사를 받아 곧 단두대에 세워질 것이라는 소문과 맞물려 민주계를 중심으로 한 개혁주도세력은 『아무래도 냄새가 난다』며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박철언의원 펄쩍
그러나 당사자로 지목된 이들은 펄쩍 뛴다.
일부 언론보도에서 경원대사건을 폭로한 박춘성교수와 친척인양 거론됐던 박철언의원은 15일 『박 교수는 생면부지인 사람』이라며 『가만 있는 나를 왜들 흔들어 대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내가 집중내사를 받고 있는 건 세상이 다 안다.
90년 모대학 입시에 둘째딸이 낙방했다. 부탁하면 합격이 가능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무시했다』고 말했다. 역시 지목대상으로 꼽히는 이원조의원은 최근 혈당이 3백60까지 오를 정도로 당뇨증세가 악화돼 K병원에 입원했다. 『환자를 두고 무슨 모함이냐』는게 측근의 전언이다.
민자당을 탈당한 박준규국회의장은 자택에서 아예 칩거중인데도 TK들과의 접촉설이 돌자 몹시 괴로워 하고 있다고 한다.
김복동의원은 한달여 미국여행을 마치고 이달초 귀국했다. 연희동(노태우 전대통령 사저)에도 들르는 일 없이 병원을 다니며 치과 치료를 하다 최근에는 『조용히 쉬고 싶다』며 혼자 지방으로 떠났다고 한다.
의원직을 사퇴한 유학성씨 역시 『할 말은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홀가분한 심정』이라며 자택에서 은둔하다시피 지내고 있다. 그런데도 반격설은 계속 돌고 있다.
최 총장 사임건이 터지자 『지난번 새정부 조각과정에서 나타난 제보­흠집내기­장관직사퇴의 과정과 어딘가 비슷하다』는 의구심이 본격화됐다.
민주계인 백남치기조실장은 15일 『최 총장 파문은 돌출적이기 보다는 부비트랩(지뢰)에 걸린 듯하다』고 말했다. 「의도적 제보」의 가능성을 지적한 말이다. 반격설을 거론하는 측은 우선 기득권세력이 코너에 몰려 난타당하고 있는 「정황」을 들고 있다.
○옛 정보쥐고 반발
또 이들세력이 오랜 집권기간을 통해 축적한 엄청난 정보량과 정보관리의 노하우를 지적한다. 여야인사와 웬만한 공직자에 대한 수십년분의 사생활 정보·비리정보에다 이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고도의 기술까지 갖추고 있지 않느냐는 설명이다.
유독 최 총장의 아들만 「제보」된 일,최근 영남 지방의원들이 은근히 실세 P씨에 관한 소문을 내고 다니는 일 등이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황만을 따지자면 일부 민정계의원들도 수긍한다. 기득권층의 위기의식은 그만큼 심각하다고 한다. 한 의원은 『쥐도 도망갈 곳을 남기고 모는 법』이라는 말로 위기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설혹 그런 「조직적」 움직임이 있다 하더라도 언론이나 일반국민이 그들의 면면이나 경위를 알게되는 시기는 반YS 신당이 창당될때쯤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상이다』고 그는 덧붙였다.
최 총장이 사임하고 아직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은 시점이던 14일 낮 한 민정계 인사는 『후임자로 민정계가 임명되지 말아야 한다. 민주계 한 명이 더 나와서 또 흠집이 나야 한다』고 극단적인 반발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격론에 대한 반론도 설득력이 크다. 한 민정계의원은 『마음은 굴뚝같다 치더라도 도대체 불가능하다. 싸워서 한두명은 목을 날린다 치자. 과연 5년내내 싸울 수 있을 것인가.
기득권세력은 모두 약점이 많고 YS개인은 약점이 적을뿐 아니라 국민의 지지가 있다. 칼자루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이 점을 잘아는 여권체질의 사람들이 조직적 반발을 도모한다는 것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줄거리다』고 가능성을 부인했다.
시나리오에 따른 반격이라기보다는 「개혁세력이 수압이 센 수도꼭지에 고무호스를 꽂고 물청소 하다 호스를 손에서 놓친 격」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위기의식에 따른 반발이라는 큰 맥은 같지만 하나하나는 돌출적이라는 해석이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개혁작업이 몇몇 각론에서는 통제력을 잃은 면도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학원비리의 경우 과거 대학이 문제학생·교수를 통제해 주는 대신 정부는 학원비리를 눈감아 주는 식의 부패고리가 있어 이를 끊는 것이 목표였는데 엉뚱하게 입시부정으로 비화됐다는 것이다. 「칼이 제멋대로 춤춘」 부분도 있다는 지적이다.
○개혁세력도 걱정
개혁세력 내부에서도 걱정이 많다. 최 총장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급속히 변해온 우리 사회이기에 정도차이가 문제일뿐 웬만한 「먼지」는 개혁·반개혁 세력을 막론하고 지도층 대부분 사람들의 안방에까지 들어앉아 있다. 이런 와중에서 「인적 청산」은 한계가 있다는 걱정이다. 제도적인 청산으로의 국면전환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노재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