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프간 피랍 한국인 무사 귀환 기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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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탈레반이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는 위협을 계속 가하고 있다. 처음엔 한국군 철수를, 그제는 ‘22일 오후 11시30분(한국시간)까지 동료 죄수 23명 석방’을 각각 요구했다.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학생조직으로 출발한 무장세력이다. 한때 아프간의 실질적 통치세력이었던 탈레반은 2001년 미국을 위시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침공으로 몰락했다 최근 세력을 급속도로 회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을 납치하거나 살해하는 만행을 자행해 공포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미 독일 회사 직원인 알바니아인 4명을 비롯해 여러 명의 외국인을 처형했다. 이번 한국인 납치가 단순한 협박용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에 대해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다. 상황은 매우 복잡 미묘하다. 그들의 요구 조건도 손쉽게 해결될 성질의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 요구인 아프간에서의 철군도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이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한국군은 연말까지 철군키로 돼 있다’는 점을 천명했고, 이를 탈레반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다행이다.

 문제는 체포된 동료들의 석방이라는 요구 조건이다. 아프간 정부, 국제사회, 자국민이 납치된 국가 간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올 3월 이탈리아 기자의 석방 사례가 대표적이다. 탈레반 수감자 5명을 석방하면 인질을 풀어 주겠다는 탈레반의 요구에 아프간 정부는 처음엔 소극적으로 임했다. 그러다 이탈리아가 철군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아프간 정부는 수감자 5명의 석방에 동의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치자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 재소자의 석방 불허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인 인질의 무사 귀환에 심각한 장애물인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프간 정부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과의 공조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은 바람직했다고 본다. 대통령이 나서 납치 측에 ‘한국군 철군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도 시의적절했다. 앞으로도 상황 전개에 따른 적절한 대응책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

 아울러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보다 용의주도한 대책이 요구된다. 아프간이 ‘여행 금지’된 이라크나 소말리아처럼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여행 제한’ 조치에 그친 것은 안일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일부 기독교계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그들은 선교와 봉사가 신도로서 ‘양보할 수 없는 덕목’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도 있는 것이다. 정부의 거듭된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아프간행을 강행해 가족과 온 나라를 걱정과 혼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것이 온당한 일인지 자문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