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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유로화 강세 반갑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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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로화가 끝없이 올라도 유럽 각국은 싫지 않은 표정이다.”
 프랑스 경제일간지 레제코의 최근 보도다. 요즘 유럽의 단일 통화 유로가 최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는 이를 두고 “비정상적인 상승”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각국은 유로화 강세를 즐기고 있는 분위기다. 독일의 피어 스타인브뤼크 재무장관은 “유로화가 올라 너무나 좋다”고까지 말했을 정도다. 자국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할 만도 한데 말이다.

 ◆원료 의존도 큰 산업구조 덕에=유럽이 ‘고(高)유로-저(低)달러’ 구조를 반기는 가장 큰 이유는 원료를 싸게 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는 해외에서 원료를 사들여 이를 재가공하는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가 떨어지면 달러로 거래되는 원자재를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자연히 생산 단가도 낮아진다.

 또 이들 나라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나라) 내 교역량이 많기 때문에 유로화 강세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예컨대 독일은 수출의 절반 이상이 유로존 국가와의 교역에서 이뤄진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이런 이유로 유로화가 일 년 내내 강세를 띤 지난해 독일이 세계 최고 수출국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게다가 유로존 국가는 유로화 강세에 따라 덤으로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도 톡톡히 얻고 있다. 특히 일반 국민이 가격 변동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가운데 하나인 휘발유 값이 최근 2년간 달러 약세로 안정됐다.

 ◆울며 겨자 먹기의 프랑스=유로존 내 대부분의 국가는 유로화 강세를 반기지만 프랑스는 사정이 다르다. 프랑스의 산업구조는 재가공 무역 형태가 아니다. 유로존이 아닌 해외로의 수출이 많다. 주력 수출품 명품이 그런 경우다. 유로화가 강해질수록 수출 부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보잉사와 경쟁하는 에어버스의 경우 1유로가 1.30달러에서 1.40달러가 되면 10억 유로(약 1조2500억원)의 손해를 본다는 경제학자들의 분석도 있다. 이런 점으로 인해 지난해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2%로 유로존 평균(2.8%)을 한참 밑돌았다. 반면 독일은 3%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상황이 비슷한 이탈리아를 부추겨 유로화를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줄곧 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인위적인 유로화 낮추기에 반대하고 있다.

독일과 룩셈부르크에 이어 지난 주말에는 포르투갈 정부가 “최근의 유로화 강세는 성장에 지장을 초래하는 수준이 아니므로 인위적인 유로화 절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결국 원군이 없는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손을 들고 말았다. 그는 16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만난 뒤 “인위적인 유로화 조정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혼자 고집해 봤자 득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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