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따뚜이’가 이탈리아 요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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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27면

“가지·호박·피망·토마토를 깍둑썰기 한 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먼저 가지, 이어 호박을 볶아 내죠. 다음으로 다진 양파를 볶다가 으깬 마늘과 피망을 넣어 볶고, 마지막으로 토마토와 앞에서 볶아놓은 가지와 호박을 섞은 뒤 바질·타임·파슬리와 같은 허브를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 20분 정도 약한 불에서 익혀주면 됩니다.”
곧 개봉할 애니메이션 제목 때문인지 ‘라따뚜이(ratatouille)’가 무슨 음식인지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이렇게 대답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것이 이탈리아 요리인 줄 알아요. 하지만 프랑스의 니스가 고향이며 프로방스 지역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죠.”
“각종 채소에다 올리브유·토마토·마늘이 들어갔으니 이탈리아 요리로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이탈리아 남부지방 요리의 특색을 이탈리아 요리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죠. 이탈리아처럼 지방마다 요리가 다른 나라도 없죠.”
“1970년대 서구에서 다이어트 열풍이 불면서 이탈리아 남부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지. 이 요리를 ‘지중해식 다이어트’라고 표현하다가 나중에 ‘지중해식 요리’라 부르게 되잖아.”

“특히 미국이 그렇게 재단해버렸죠. 이탈리아 대부분의 요리에서 반드시 필요한 버터·크림·돼지고기·돼지기름, 나아가 쇠고기와 송아지 고기 같은 음식재료들을 배제해버렸죠. 결국 이탈리아인들 식습관의 진짜 모습을 왜곡한 것이죠.”
“이탈리아 남부지방 농민의 음식을 ‘쿠치나 포베라(Cucina povera)’, 곧 ‘가난한 자의 요리’라고 하잖아. 결국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가난한 자의 음식을 부자의 식탁에 올라가게 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러한 왜곡은 프랑스 요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라따뚜이’를 이탈리아 요리로 잘못 여기듯이, 프랑스 요리를 모두 다 기름지고 무거운 것으로 여기는 것도 편견에 불과하죠. 프랑스 요리도 지역마다 다르죠. 또한 70년대 다이어트 바람과 함께 가볍고 덜 기름지며 재료의 본래 맛을 살리면서 세련된 음식을 내려는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 새로운 요리)’의 움직임이 프랑스 요리를 날씬한 몸매로 만들어주었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프랑스 요리’라 하면 그 자체가 주는 부담감 때문에 무겁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 그래서 프랑스 요리가 대중성을 얻지 못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프랑스 식당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

“현상만 보면 프랑스 요리가 지고 이탈리아 요리가 뜬다고 말할 수 있겠죠. 끊임없는 영양학적 관심이 요리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서구의 각 요리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하잖아요. 따라서 프랑스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나 그러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겠죠.”

서울 청담동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미피아체’(02-516-6317)에서 음식수다는 길어졌다. 요리의 기본에 충실한 음식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꾸준히 찾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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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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