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라디오 DJ로 나선 가수 심수봉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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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79년10월26일 궁정동의 총소리는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 자리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는 가수 심수봉(39)도 그중 한사람이다. 78년 MBC대학가요제 참가곡인 『그때 그사람』이 음반으로 나와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한지 불과 6개월도 못돼 10·26이 터진 것이다. 명지대 4학년 때 일이다.
그녀는 이후 상당 기간을 기관에 불려 다녔다. 84년까지 방송출연이 금지됐다. 『잠 속에서도 간간이 총성이 들렸다」고 한다. 아픈 기억을 지우기 위해 일상이 거세된 초능력의 정신세계로 빠져든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그녀의 불운은 여기에서 꺾이지 않았다. 정신세계에서 방황하는 동안 현실세계에서는 여자로서의 불행한 사건들이 잇따랐다. 『슬픔이 차 올라 이때는 노래를 부를 수도 없었다」고 한다. 84년 방송출연이 허용되면서『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내놓고 노래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으나 얼마 못가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던 그녀가 1일부터 라디오 음악프로의 진행자로 나서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녀가 맡은 프로는 매일 오후2시20분부터 40분간 방송되는 MBC AM『심수봉의 트롯 가요앨범』.
『긴 동면에서 깨어난 기분이에요. 말주변이 없어 DJ를 맡기가 두려웠지만 새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사양했던 TV출연도 열심히 할 작정이에요.』
85년 기독교에 귀의하면서 정신적 안정을 얻기 시작한 그녀는 이제 자신의 과거를 멀리에서 바라볼 만큼 여유를 찾았다고 한다.
자신을 괴롭히던 기억들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한다.
그 상처들을 노래한 음반『우리는 타인』이 이미 나왔고 5월말이면 새 음반을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불행을 예고하는 듯한「청승맞은」목소리로『그때 그사람』을 부른지 15년만에 그녀는 진짜 자신의 한을 노래하게 된 셈이다. 그 목소리가 어떤 울림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녀는『한이 서린듯한 목소리는 집안의 유산』이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인간문화재 심상곤씨를 가르친 당대의 명창으로 최근에는 서울대측에서 그를 기려 충남 서산 생가에 비석까지 세웠으며 아버지도 국악에 한 평생을 바쳤다고 한다.
『정서적으로 두 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그녀는 11일 밤 SBS-TV『주병진쇼』에 출연, 한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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