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노무현과 안대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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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람을 다루는 저마다의 방법이 있다. 당장 떠오르는 게 채찍과 당근이다. 위협과 회유로 다루는 거다. 반응이 빨리 온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거래다. 때문에 뒤를 기약하기 어렵다. 그래서 끝이 나쁜 경우가 많다.

전혀 다르게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 있다. 믿느냐 마느냐다. 믿으면 무조건 맡기거나 맡겼으면 무조건 믿는 거다. 믿지 못하면 맡기지 않고 안 맡겼으면 믿지도 않는 것이다. 반응이 늦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늦은 만큼 결말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많은 사람이 검찰을 권력의 시녀라 했다. 엊그제까지 그랬다. 물론 지금도 일각에선 그런 소리를 한다. 권력의 입맛에 따라 검찰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만 탓할 일은 아니다. 검찰을 장악하려는 권력의 의지가 그만큼 집요했다. 권력의 생존과 직결됐기 때문이다. 쿠데타 세력도, 민주화 세력도 그 점에선 다르지 않았다. 살자면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른다. 반대세력을 치기 위해 검찰이 필요했다.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은 역시 채찍과 당근이었다. 그것으로 권력은 검찰에 줄서기를 강요했다. 그래서 드러난 결과는 보이는 그대로다. 권력도 검찰도 병들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유혹을 안 받았을 리 없다. 소수정권일수록 유혹의 강도는 더한 법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하려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힘이 뒷받침되지 못해서다. 손에 쥐고 흔들어댈 채찍도 당근도 없었다. 그러기도 전에 저항에 부닥쳤다. 결과적이지만 盧정권이 택한 방법은 무조건 믿어보는 거였다. 그러고 싶어서라기보단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믿어서 맡긴 게 아니라 맡기고 믿은 거다.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그들이다.

盧대통령과 그들 사이에 별다른 인연은 없다. 安중수부장과 사법시험 동기인 정도다. 그렇다고 관계를 유지한 건 아니다. 宋총장과는 그나마의 인연도 없다. 그렇게 그들은 출발했다. 처음엔 삐걱거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도 믿음을 저버리진 않은 것 같다. 별다른 게 아니다. 줄 세우지 않았으니 줄 서지 않은 거다.

지난 여름의 일이다. 정권의 최고 실세가 安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점심이나 먹자는 얘기였다. 의도는 짐작이 간다. 줄 세우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安부장은 응하지 않았다. 몇 번 더 전화했지만 변함이 없었다. 그 측근은 얼마 전 대검 중수부의 조사를 받았다.

盧대통령은 지금 상처 투성이다.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거의 씨가 말랐을 정도다. 盧대통령 본인이 조사받아야 할 판이다. 혼자 당한 일이라면 그는 배신을 당한 셈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그러나 반대편을 보자. 붕대를 감고 목발에 몸을 기댄 형국이다. 한나라당의 오늘 모습이다. 盧대통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멍이 들었다. 어디까지 더 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야당은 형평성을 얘기한다. 야당 죽이기 사정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호응이 약한 게 사실이다. 대통령도 그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한번 가정해보자. 盧대통령은 멀쩡하고 한나라당만 그 꼴이 됐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고 있을 것이다. 가만있을 국민이 아니다. 검찰도 망했고 盧대통령도 망했을 것이다.

盧대통령이 언제부터 큰소리를 쳤는지 더듬어 보자. 재신임 얘기를 하면서부터다. 측근 비리 때문에 재신임을 묻겠다던 盧대통령이었다. 결과론적이지만 盧대통령을 살린 건 그의 측근 비리를 파헤친 검찰이다. 그런 검찰을 만든 건 채찍이 아니었다. 당근도 아니었다. 그저 신뢰였다. 이유야 어찌 됐든 말이다.

이연홍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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