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유관순·허난설헌… 새 화폐 여성 인물 넓은 시각서 찾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화폐 도안은 각국의 소중한 유산을 기록하고 역사 속의 훌륭한 인물을 기억하도록 하는 일종의 역사 교과서다. 또한 세계에 그 나라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 주는 창구 역할을 한다.

 한국의 화폐 도안은 남성의 독무대다. 최근 한국은행이 5만원·10만원 고액권 화폐에 수록될 인물을 선정 중인데 여성의 소망이 무시되고 있어 안타깝다. 한국은행은 수록될 인물의 1차 대상자로 우선 20명을 선정하고 이 중에서 한 명을 최종 결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런데 후보 20명 가운데 19명이 남성이고 여성은 신사임당 한 명뿐이다. 신사임당은 훌륭한 아들을 키운 어머니로 평가돼 그의 그림이 아들 율곡이 그려진 5000원권 화폐 뒷면에 이미 수록돼 있다. 이 때문에 신사임당이 새 화폐 도안으로 선정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은행이 새 화폐에 여성을 수록할 의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대부분 나라에는 여성 인물이 화폐에 수록돼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한 면에는 남성, 다른 한 면에는 여성을 동시에 수록해 남녀 형평을 기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최초로 이구치 히치요라는 여성 작가를 화폐에 수록했다. 중국은 한복 입은 조선족 여성을 화폐에 담았다.

 우리 역사에도 화폐에 기록될 만한 뛰어난 여성이 많다. 유관순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여성들, 허난설헌·나혜석 같은 예술가, 최초의 여성 변호사로 여성운동에 헌신했던 이태영 같은 분들이다. 특히 의녀 김만덕은 역경을 딛고 성공한 기업인으로 ‘의녀반수’라는 최고의 벼슬에 올랐다. 그는 흉년이 들었을 때 사재를 털어 수천 명의 제주도민을 구했던 사회사업가로 화폐에 기록되는 데 전혀 손색이 없다.

 한국도 새 화폐의 인물로 여성을 선정해야 한다. 남성 역사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사회에 공헌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했던 여성을 찾아 기려야 한다. 한국 여성들은 폭발적인 재능과 열정으로 한국 사회의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로 뻗어나갈 미래지향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위해서도 화폐 도안의 여성 인물 선정은 타당하다. 한국은행은 이제라도 남성들로 구성된 선정위원을 재구성해 새로 선정 과정을 밟아야 한다.

김경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