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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총사 아침 「나홀로 시간」1초가 아깝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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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새벽5시. 밤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깜깜한 한밤중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체조등으로 몸을 푼 뒤 그는 집안에서 IBM컴퓨터와 마주앉았다.
우선 개인(ID)번호와 비밀번호를 컴퓨터에 차례로 입력시킨다. 개인번호는 KDSELCCC.
비밀번호를 누르다 회사의중앙컴퓨터아컴퓨터 화면에 전날 오후늦게 그의 앞으로 보내진 광주고속의 영업활동보고서와 그룹전체의 일일 자금계획, 하루일정, 지방공장의 재해발생보고등수십건의 보고내용이 떠오른다.
대기업그룹 금호 박성용회장의 하루시작이다.
금호그룹은 수년전부터「1인 1PC (퍼스널컴퓨터)」운동을 벌이면서 신입사원이 들어오자마자 데이콤에 한달간 위탁교육을 보내고 있으며 2년전부터는 자체개발한「텔리피아 시스팀」을 통해 모든 사원이 컴퓨터로 보고서를 작성해 상급자의 결재를 받도록 하고 있다.
박회장 집안의 컴퓨터도 그중 하나다.
물에 밥말아 먹어-박회장은 수십건의 보고내용을 정리한 뒤 조간신문을 펼쳐든다. 큰제목을 훑어본뒤 관심이 가는 기사를 챙겨 꼼꼼하게 읽는다.
전날 퇴근때 회사에서 들고온 일본경제신문과 일본화학공업신문도 빼놓지않고 읽는다.
박회장은 먹성좋기로 소문나 있다.
아침은 채식을 주로 해서양식과 한식을 두루 먹는다.
반찬이 모자라면 맨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소리를 내며 들이키기도 한다.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회사까지 10여분의 출근시간중에는 차 ( 그랜저) 안에서 미국의 르천느 등 외국경제전문잡지와 집에서 못다읽은 신문을 읽는다.
어두운데서도 책을 볼 수 있도록 차안에 실내등 2개를 달았다.
박회장의 아침일과가 「정중동」 이라면 김자중 대우그룹회장은 총수들중에서 가장 빠듯한 일정을 까놓고 움직인다. 요즈음 김회장의 발걸음이 「대우차의 세일」로 더욱 바빠졌다.
20일 아침 7시15분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헬리콥터장.
김회장은 7인승 대우시클스키헬리콥터를 타고 원주로 향했다.『사원들이 차한대 파는데 회장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전국 어디라도 가겠다』는 그의 말대로 원주에서 택시기사 30명을 만나 대우차에 대한 갖가지 불만을 듣고 『대우차를 사달라』고 판촉을 했다.
김회장의 「시간 쪼개쓰기」는 유명하다. 차를 타면 5∼10분씩의 쪽잠으로 부족한 수면시간을 보충하지만 교통체증등으로 자동차의 속도가 느려지면 눈을 뜰만큼 민감하다.
「구상」에 밤지새- 차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시간의 차안에서는 보고서와 신문등을 주로 본다.
76년 한국기계를 인수했을때는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새벽4시에 집을 나서 부인이 차안에 밀어넣어주는 국밥을 먹으면서 인천공장으로 달려가곤 했을만큼 시간을 쪼개쓴 사람이다.
총수들중에서 새벽에 일찍일어나기로는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이 단연 으뜸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조간신문등을 보고 6시30분쯤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정회장은 과거에 청와대경내를 통과해 계동의 사옥까지 걸어서 출근했으나 요즘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고 있는 뉴그랜거 승용차를이용한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규칙적인 시간을 정해놓지 않는다.「즐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 스타일.
일이나 생각에 몰입할 때면 밤을 꼬박 지새고 그 이튿날도 정상활동을 계속한다.
집중적으로 일을 하는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주지않기위해 회사에 매일 출근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자택에서 주요업무를 챙긴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자료·비디오를 보거나 관련 서적을 읽는다든가 혹은 몰두하고 있는 관심사항에 관해 관계자와 얘기하다보면 새벽이 되는 일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회장은 출근이 따로 없어 그가 위치한 곳이 바로 「전략사령부」이기도 하다. 외국에 나가도 언제든 그룹을 장악할 수 있도록 통신시설등 모든 기능이 갖춰진다.
새벽4시 일어나-구자경럭키금성회장은 정원의 화초와 나무들을 둘러본 뒤 일과를 시작한다. 최종현선경그룹회장은 아침6시에 일어나 단전호흡을 하면서 하루일과를 구상하고 김중원한일그룹회장은 아침5시30분쯤 일어나 20여분간 요가를 한다. 이동찬코오롱그룹회장은 집(방배동)주변을 30여분간 산책한 뒤 근처 약수터에서 약수를 한잔 마시고 돌아와 조간신문을 숙독한다.
재벌총수라고 해서 아침일정이 유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새벽부터「고달픈」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김우중회장의 아침식사 메뉴를 보고 『저걸 먹으려고 총수하나』하고 측은하게 여긴 「대우맨」도 있을 정도다. 총수의 아침은 화려하지도, 근엄하지도 않다. <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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