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찌산의 이면생활 새롭게 조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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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 는 발언을 한 어느 국회의원이 구속되는 무거운 시기에 밤을 새우며 『태백산맥』을 읽었다.
나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로서 용감한 우리 국군이 졸고있는 인민군 보초를 소리없이 다가가 단 한방의 주먹으로 나가떨어지게 하던 반공영화를 단체관람하며 박수를 쳤고, 또『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던 이승복군의 얘기를 교과서에서 배우며 눈물흘렸던 그런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다.
역사가 역사로서의 사실 이전에 정권유지·안보의 차원에서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을 헤쳐온, 6·25를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로서의 나는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됐다.
그들의 가슴에도 사망이 있었음을 알았다. 우리의 무고한 농민들이 부역탓에 할 수 없이빨찌산이 돼야 했던 슬픈 사연도 알았다.
사실 나는 고향을 북에 두고 온 부모밑에서 자랐다.
늙어가는 내 부모에게 북은 더이상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다.
내 삼촌· 사촌이 살아있는곳, 언제나 가고싶은 굿, 거기엔 이념도 체제도 중요할 수 없었다. 러시아와 수교를 하고 중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게 된 이 시대에 더이상『태백산맥』 이라는 소설은 위험한 책일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 형제, 내 동포가 아직 살아숨쉬는 그곳은 더불어 살아가야할 내 땅인 것이다.
나는 이 순간 살았으면 내동년배가 되어 혹 쓴 소주잔을함께 나누고 있을지도 모를 이승복군을 생각한다. 그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지 않고 『나는 공산당을 몰라요』 했더라면. 그런 감상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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