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달라지고 있다(새바람 개혁바람:4·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사정한파에 유흥업소 “몸살”/룸살롱·요정 공직자 발길 “뚝”/「일과성」아닌 의식혁명으로 이어져야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영업부장 K씨(38)는 요즘 사정한파 덕을 톡톡히 보고있다. 평소보다 상담에 성공하는 건수가 훨씬 늘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이어들과 상담을 위해 급히 대형음식점이나 룸살롱 등을 예약하려 해도 빈방을 구하지 못해 고객앞에서 체면을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예전과는 상황이 딴판으로 변했다. K씨는 예약없이 찾아도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최근의 업소사정이 자신의 실적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다.
강남의 D대형음식점은 어지간한 불경기 속에서도 늘 흑자를 유지하던 영업실적이 2월 내내 손익분기점을 맴돌다 월말결산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4백50평 규모의 3층건물에 1백여평의 입체식 주차장까지 갖춘 이 음식점은 지난달초까지 5백여석의 테이블중 90% 이상이 찼으나 최근 들어서는 60%도 채우기 어려운 실정이다. 심한 경우 30%를 밑도는 날도 있다.
특히 주고객이던 인근 석유개발공사·건설회관·관세청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긴 뒤로는 하루 평균 20건 이상이던 예약손님이 요즘은 절반인 10여건도 채우기 힘들다. 이에따라 지난해 1백10명이던 종업원이 현재는 80여명으로 줄었다.
회식장소로 이 음식점을 즐겨찾던 관세청 B사무관(36)은 『부서회식은 물론 한달에 3∼4번꼴로 갖던 술자리마저 대통령 취임식 이후 한번도 없었다』며 『퇴근과 동시에 귀가하기 바빠 부인들이 오히려 좋아한다는 동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정한파는 룸살롱이나 대형요정 등에서 더욱 세차게 몰아치고 있다. 서울 강남 등 유흥업소들은 예약이 전무한 상태가 며칠씩 계속되거나 하루에 손님을 한팀도 받지 못하는 날도 많아 전업을 서두르는 업소도 생겨나고 있다.
사정바람이 불때마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역시 골프업계다. 여주·이천·용인 등 수도권 일대 골프장의 평일 내장객수가 평균 30% 이상,주말에는 10% 이상 줄었을뿐 아니라 실내골프연습장 이용객수도 10%가량 줄었다.
건설업자 H씨는 『한달전만 해도 공직자들의 주말 부킹 해결이 난제중의 난제였으나 요즘은 부킹 해놓고도 「모시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관광업계도 사정한파에 휩싸이기는 마찬가지여서 고위공직자의 외유는 물론 일반 단체관광객 수도 급격히 줄었다.
1,2월중 각각 2만4천45명,2만3천4백48명이던 김포공항의 하루 평균 출입국자 수가 이달들어 2만1백36명으로 17%나 줄었다.
해외관광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들의 경우 대통령 취임식 이후 매출액이 지난해말과 금년 1월에 비해 평균 50%나 감소,울상을 짖고있다. 그러나 과거 정권교체기 때면 으레 개혁구호와 그에 따른 사정한파가 통과의례처럼 한차례 휘몰아쳤던 것이 우리의 생생한 경험이다.
그때마다 「소나기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에 몸을 움츠리고 소나기가 한시바삐 지나가기를 기원했던 것이 또한 현실이었다. 이번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슬퍼런 사정한파가 일과성으로 끝날 것으로 보는 우려와 함께,그렇게 되기를 뒷전에서 바라는 기대심리가 공존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새롭게 불고있는 개혁바람이 일과성 사정한파에 그치지 않고 의식혁명과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된 의지와 「윗물」이 언제까지나 청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들 또한 자정노력과 사고전환을 통해 스스로 이같은 개혁바람에 동참할때 진정한 개혁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이훈범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