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남긴 어설픈 「재산공개」/이훈범기자 사회부(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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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국무위원등 장관급 공직자들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재산이 공개된 18일 오후 본사 편집국에는 시민·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공직생활을 주로 해온 이들이 부정한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수억대의 재산을 모을 수 있었겠는가』라는 개탄의 목소리도,『소문으로 듣던 것에 비하면 끝자리 숫자에 0 하나가 빠진 느낌』이라는 불신의 시각도 있었다.
모두를 부동산 투기꾼으로 싸잡으며 『이처럼 「혼탁한 물」이 어떻게 개혁에 앞장설 수 있겠는가』라며 자조섞인 울분을 토로하는 시민도 많았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는 건국 이래 처음있는 일이어서 「얼마만큼이나 정직하게 공개할까」하는 의구심과 함께 새정부의 개혁의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기대는 곧 실망으로,실망은 배신감으로,배신감은 공분으로까지 급속히 이어지는 느낌이다.
공개내용을 살펴보면 재산의 평가절하를 위해 고심한 흔적이 너무나 역력해 주권자인 국민을 우롱했다는 감정을 넘어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속사정에 연민의 정을 가질 정도다.
수년전에 산 아파트를 시가의 절반도 안되는 분양가로 신고한 장관이 있는가 하면 수억대의 부동산을 소유했으면서도 값나가는 동산은 하나도 없다는 장관도 있다.
공직자 재산공개가 재직기간중 직위를 이용한 부정축재를 방지하는데 의미를 담고 있다면 취임전 다소 재산을 모았다 하더라도 퇴임시 부당한 재산증식이 없다면 거리낄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공개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재산공개가 공직자의 과거를 검증하는 방법으로 변질되다시피한 우리의 현실에서 그간의 재산축적과정이 국민의 의혹을 사기 충분하다.
김영삼대통령의 「윗물맑기운동」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공직자 재산공개가 이같이 불투명하다보니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개혁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아랫물이 맑기위해서는 윗물부터 맑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납득키 어려운 재산 취득경위를 비롯,재산축소평가·누락·위상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실사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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