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야구 심판 갈등 부추기는 KBO의 원칙 없는 밀실 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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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 프로야구 심판들이 동요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원칙 없는 밀실행정 탓이다. 모처럼 프로야구가 관중몰이를 하고 있는 마당에 KBO와 심판, 심판은 심판끼리 반목과 질시로 심판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KBO는 15일 김호인(53) 심판위원장을 전격 경질했다. 시즌 중 심판 수장을 교체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하일성 KBO 사무총장은 "심판위원장 경질은 신상우 총재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2군에 있는 허운(48) 심판위원을 1군에 복귀시키라는 총재의 지시를 김 위원장이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사건의 발단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말 1군 심판 팀장 세 명을 경력 13~14년차의 후배로 교체하면서부터다. 김 위원장은 "서열 위주에서 벗어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차가 많은 심판들은 "실력에 따른 팀장 인선이 아닌 위원장의 일방적 권력행사"라고 비판했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의 라이벌인 허 위원의 반발이 거셌다. 허 위원 측은 경기 보이콧 움직임까지 내비쳤다. 이런 사유들로 인해 허 위원은 올 시즌 초 2군으로 강등됐다.

김 위원장과 허 위원은 1987년 심판으로 함께 데뷔한 20년차 베테랑이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엇갈려 지금은 반목의 골이 깊게 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37명의 1, 2군 심판들이 자의건, 타의건 이들 중 한쪽에 줄을 섰다. 서로 다른 '계보' 끼리는 식사도 같이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를 해결.조정해야 할 KBO는 거꾸로 심판들의 불신만 키워 사태를 꼬이게 하고 있다.

당초 하일성 총장은 허 위원을 1년간 2군에 보내기로 김 위원장과 약속했다. 그래 놓고 이상일 운영본부장은 올해 초 허 위원에게는 '3개월 뒤 1군 복귀'라는 각서를 써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이 본부장은 "본인이 자숙하면 징계를 완화해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변명했지만 KBO의 이중 플레이라는 비판은 지우기 어렵게 됐다.

김 위원장 측 심판들은 "심판계를 흔든 사람의 잘못은 화합이란 이름으로 덮어 주면서, 조직의 수장을 짜른다는 게 형평에 맞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KBO는 잔꾀로 조직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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