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사나이」박태준의 역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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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뚝심」으로 세계 3위 제철소… 정치외도로 흠집
지난 25년간 포항제철과 박태준은 하나의 동의어였다. 「철의 사나이」로 불린 박씨가 없는 포철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박씨는 25년전 무의 상태였던 포철을 세계 3위의 철강회사로 키워 세계 철강업계에서도 「거목」으로 인정받는 성공한 경제인이었다.
그러나 81년 국회의원 당선으로 시작한 정치판에서의 활동은 끝내 그에게 상처만을 남기고 퇴임식마저 못한채 「자식 이상으로 아꼈던」포철을 떠나는 사태를 빚었다.
지난 27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기계공학과와 육사(6기)를 나온 그는 61년 박정희국가재건회교회의의장 비서실장을 거쳐 68년 박 대통령으로부터 포철 설립지시를 받아 철강인생을 시작했다.
포철은 그러나 태동단계부터 시련이 컸다. 국제차관단이 끝내 자금 및 기술제공을 거부했고 국내 여론도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며 반대가 극심했다.
박씨는 그러나 특유의 뚝심과 박 대통령의 후원으로 논란 끝에 대일청구권자금 일부를 포철 건설자금으로 돌리는데 성공,스파르타식의 매서운 지휘로 제철소를 건립해 나갔다.
연산 2천1백만t,자산규모 11조7천억원,제조업 매출액 국내 1위,연속 흑자,자기자본비율 41%인 우량기업­포철과 박씨가 일구어온 결실이다.
그러나 포철은 박씨의 방풍벽에 안주하고 독점기업으로서 수요업체 등에게 관료적으로 군림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또 1인 장기집권과 군대식 문화의 폐해도 자주 지적됐다. 더구나 박씨의 정치외도는 박씨 자신은 물론 포철에도 흠집을 냄으로써 「박태준왕국」의 마무리가 씁쓸한 느낌이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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