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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남북 등거리 외교」가 결정타/북­중관계 왜 급냉하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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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경화 요구 등 무역마찰도 한 요인/수반 예우안해 김정일 방중무산
전통적 「혈맹」관계를 강조해온 북한­중국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북한은 이날 8일로 예정된 노동당비서 김정일의 중국방문 계획을 일방적으로 취소한데 이어 중국을 겨냥한 공개적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다.
김정일은 4일 발표한 교서를 통해 『사회주의 이념이 경제구축을 위해 물질적 동기를 유발하는 것보다 중요하다』『사회주의 경제를 위해 당과 국가의 노동자계급 주도를 부인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사회주의시장경제를 맹렬히 비난했다.
북­중관계가 이처럼 악화일로를 치닫게 된데는 ▲한중수교에 따른 정치적 배신감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지원중단 ▲중국의 남북한 등거리외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등소평 원색 비난
북한은 한중수교가 이뤄진 직후 중국최고지도자 덩샤오핑(등소평)을 비롯한 중국지도부를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새로운 판도』라는 원색적 비난은 물론 지난해 12월 「조중우호협력조약」 파기 및 46억4천만달러에 이르는 채무탕감과 함께 북경주재 북한대사 소환,관광·문화·체육교류 중단을 요구하는 「항의비망록」까지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북한측의 거센 항의에 대해 중국측도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북한의 요구를 일축함으로써 양국 관계는 더욱 냉각되고 말았다.
중국은 새로운 당지도부를 구성한 지난해 10월 제14차 전국대표대회(14전) 직후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김일성의 요청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당총서기 장쩌민(강택민),국무원총리 리펑(이붕),중앙군사위 부주석겸 정치국상무위원 류화칭(유화청) 등 중국고위 인사들의 북한방문 요청에 대해서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이달 8일 중국방문을 계획했던 김정일의 방문장소를 북경이 아닌 심양 등 변방으로 고집하고,접견인사도 총서기·총리가 아닌 정치국상무위원으로 격하시킴으로써 국가수반으로서의 예우를 희망했던 김정일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깔아 뭉개 방문계획 자체가 취소되고 말았다.
중국은 특히 조약파기 및 채무탕감 등 북한측 요구에 대해 양국 조약을 포함한 외교문제는 상호협의를 통해 처리하고 북한의 채무는 상환을 재촉하지 않을 것이나 중국의 대북경제원조는 중국측 사정에 의해 결정될 수 밖에 없다며 북한측 요청을 모두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경제 큰 타격
국무원총리 이붕이 지난 2월 ▲북한과 더이상의 정치·군사적 협의불허 ▲북한에 선진군사장비 불제공 ▲한반도 비핵화 지지 및 핵무기 개발 반대 ▲남한의 북침가능성 불인정 ▲한중수교 및 우호발전의 아시아평화 기여 등 8개항을 남북한 외교지침으로 시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중국이 과거 북한일변도의 한반도정책에서 탈피,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이나 협력을 하지 않으며 남북한에 똑같은 비중을 둔 등거리 외교로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을 낳고있다.
북­중관계 악화의 또다른 배경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지원 중단이다.
중국은 지난해 1월26일 평양에서 체결된 조중무역협정에서 92년도부터 양국정부간 무역을 종전 물물교역에서 현금결제로 전환하고 원유도입분도 경화결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새로운 무역방식이 북한에 심대한 타격을 미칠 것이 불가피하고 특히 한중수교를 고려,일단 유보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한중수교가 마무리된 지난해 12월 리란칭(이람청) 대외무역부장과 강정모북한대외경제위 부위원장의 북경회담에서 93년도부터 양국 무역거래에 있어 현금결제를 해줄 것을 거듭 요구,북한에 대한 더이상의 배려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가트 가입 사전 정지
중국이 이처럼 북한에 대한 특혜무역조치를 단절하려는 데는 우선 금년 상반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가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GATT에 가입할 경우 특정국에 대한 특혜무역이 규정위반으로 지적된다.
여기에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정치성을 띤 계획적 지원보다 경제이익을 우선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그동안 청산계정에 의해 운영돼온 중국과의 정부간 거래가 현금결제로 전환될 경우 원유·석탄·코크스·군수물자 등 전략자원 확보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한 실정이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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