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앞장서 나누는 대통령/문민정부 출범을 지켜보며…(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으로 문민민주시대가 다시 열렸다. 5·16 이후 실로 32년만이다. 한세대만에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군 배경이 없는 순수 민간정치인 출신 대통령을 맞게된 감회는 각별하다. 문민시대로의 복귀,그 자체도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문민시대가 이룩해내야할 내용이다. 도덕성과 업적 및 효율성에서 지난시절과는 차별성을 보여야 한다.
○역사의 책임 더 커졌다
김영삼대통령은 우선 경쟁자들이 승복하는 국민 직접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차별성을 지닌다. 그만큼 집권의 정통성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국민과 역사에 대한 책임은 더 크다고 봐야한다. 출발선에 선 지금은 좋은 것 모두를 이룩해 보고싶은 의욕에 차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의 지도자라고 해서 일시에 좋은 것을 모두 할 수는 없다. 어차피 선택을 해야한다. 98년 2월까지의 5년 임기는 하고싶던 일을 다 하기에는 짧은 세월이다.
우리가 보기에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위기의 경제를 회생시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국민이 서로 고통을 나누면서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를 만드는게 가장 중요하다. 김 대통령이 강조해온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국가기강의 확립은 신바람 나 열심히 일하는 국민적 분위기를 만드는 기초조건이 된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내외의 위기는 심각하다. 냉전체제의 붕괴에 이은 대국의 경제패권주의와 블록화 현상,그리고 저임을 무기로 한 후발도상국들의 추격은 우리 경제를 앞과 옆과 뒤에서 압박해 들어오고 있다. 거기에 지난 수년간 국내의 흐트러진 분위기가 겹쳐 자칫하면 선진국의 문턱에서 이류국으로 전락할지 모를 위기에 처해있다.
국민적인 대각성과 사고 및 행동의 대변화가 요구된다. 일하는 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고통이 따르는 변신이다. 강한 동기가 부여되어야만 그러한 변화는 가능하다. 바로 지도자의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국민 대각성 필요
공정한 선거와 42%라는 높은 국민 지지를 받은 김 대통령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여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선거에서 지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강력한 지도력은 나오지 않는다.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지도력은 지도자의 자기희생과 솔선수범에서 비롯된다. 국민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려면 먼저 자신과 주변에서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부정부패를 없애려면 청와대와 집권당,그리고 정치에서부터 부정의 소지와 부패의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 국가기강을 바로잡으려면 지도층에서부터 탈법·불법이 사라지고 지도층일수록 더욱 엄격한 법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대통령의 「윗물 맑기」운동은 일단 바른 접근으로 보인다.
그런 자기희생과 수범의 바탕에서 새 대통령은 강한 지도력으로 국민들이 위기의식을 지니고 더욱 열심히 일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필요하면 고통의 분담도 요구하고,단기적으로는 인기없는 시책도 미래를 위해 필요한건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표와 인기를 너무 의식하며 입안된 선거공약에 매이지 말고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가장 시급한 과제인 경제회생을 위해 새정부는 경기의 활성화 작업에 당장 나서야 한다. 산업현장에 만연한 심상찮은 좌절감과 사기저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중소제조업 경영자의 깊은 실의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얼마간의 경기진작은 절대로 필요하다.
경제정책을 운용함에 있어서는 입안단계에선 철저한 현실파악을,집행단계에선 빈틈없는 확인이 요구된다. 그 숱한 중소기업 지원시책들과 중소기업들의 혹심한 경영난이 오래 병존해온 이유는 바로 실효성 없는 정책에 있었다. 앞으로 모든 경제정책은 사무실이 아닌 공장과 시장바닥과 은행창구에서 입안해야 한다.
○희생해야 강한 힘 발휘
새로 구성될 경제팀은 취임과 동시에 밤을 새워서라도 산업활동의 현장을 샅샅이 살펴보는 열의와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시들어가는 경제를 되살리는 국가적 역사의 출발신호는 바로 그같은 정부의 고통스러운 실천을 통해 전국민들에게 울려퍼지도록 해야한다.
앞으로 5년 온국민이 위기의식과 고통을 나눠갖고 분발토록 하느냐,못하느냐에 국가의 장래와 함께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걸려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