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식인의 대선 줄서기 너무 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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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오면서 지식인들의 동요가 심각하다. 자문교수단이 300~500명이 안 되면 주요 후보 축에도 낄 수 없는 형편이다. 여기에 일부 언론인 출신도 가세하고 있다. 과거 아침 인사가 ‘밤새 안녕하시냐’였듯이 요즘 교수들을 만나면 ‘어디서 뛰고 있느냐’는 게 인사가 돼 버렸다 한다.

 교수라 하여 정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들이 항변하는 대로 자신의 철학과 전문성을 현실 정치에 반영해 보겠다는 의욕을 폄훼(貶毁)할 일도 아니다. 대통령 후보들의 막연한 구상을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다듬어주는 건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정치적 중립성이 필요한 직분이라고 정치적 견해마저 가지면 안 된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나 최근 이들이 보여 준 행태는 선량한 상식의 기준을 한참 벗어나 있다. 대선 후보에게 줄 서지 않은 교수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정책이나 소신보다 선거 후 얻을 자리를 따져 줄 서는 경향이 농후하다. A후보에서 B후보로, 또 C후보로 여론의 흐름을 따라 옮겨 다니는가 하면, 보고서를 만들어 세일즈하듯 머리를 디밀고 다니는 교수도 있다고 한다. 학생 지도는 뒷전이다. 이런 교수가 많다면 대학이 무슨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각 대선 후보 진영도 문제다. 지지 교수의 숫자가 무슨 영예라도 되는 양 세(勢) 과시에 이용한다. 심지어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민단체나 언론에까지 손을 내밀어 사회 전체를 편 가르기 하는 바람에 양심적 지식인이 설 자리는 사라지고, 선거는 공해가 돼 버렸다.

 언론인은 공무원과 똑같이 공직에 출마하려면 60일 전에 사퇴하도록 법(공직선거법 제53조 공무원 등의 입후보)으로 규제하고 있을 정도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자신의 직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교수도 비록 법적으로는 정치 참여의 제한이 없다고 하지만 직업윤리에 비춰 볼 때 이런 식으로 몰려다니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식인답게 처신하는 모습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