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기다려야 득 없다” 강남 중층이 움직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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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가 최근 구청에 재건축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했다. 2003년 5월 조합 설립 이후 4년여 만에 재건축사업을 재개한 것이다. [중앙포토]

 현 정부 들어 규제가 집중돼 재건축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 서울 강남권 중층(대개 10~15층) 아파트. 규제 완화를 기다리며 사업에 손을 놓고 있던 단지들이 하나 둘씩 다시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올 대통령 선거 이후 정권이 바뀐다고 정책이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고 시설은 하루가 다르게 낡아지기 때문이다. 주민들 사이에 사업이 늦어질수록 수익성만 악화될 것이란 불안감이 커져 재건축을 서두르는 단지가 늘어날 전망이다. J&K 백준 사장은 “중층 재건축은 자기 돈을 들여 자기 집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규제완화 기대 못해”=지은 지 26년 된 강남구 삼성동 홍실아파트(384가구). 일찌감치 2002년 재건축조합을 설립해 사업승인을 준비하다 지난해 5월 주민총회에서 사업을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었다. ▶중소형 의무비율 ▶개발이익환수제 ▶초과이익환수제 ▶용적률 제한 등 잇따른 규제로 사업성이 나빠졌다고 판단돼서였다.

 중층 단지들은 재건축으로 높일 수 있는 용적률 여유가 많지 않고 크기를 키우면 일부 주민은 기존 집보다 작은 집을 배정받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이전 크기 그대로 지어야 한다. 일반분양분이 많지 않아 주민들의 공사비 부담이 크다. 여기다 초과이익환수제에 따라 재건축 사업기간 동안 오른 집값의 일부를 완공 후 부담금으로 물어야 한다. 홍실뿐 아니라 강남권 상당수 중층 단지들의 사업이 중단된 이유다.

 이런 홍실이 지난달 말 주민총회에서 사업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의했다. 주민 동의를 구하고 설계용역을 줘 사업승인 준비에 들어갈 계획이다. 홍실 서우석 조합장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집값 불안감 때문에 쉽게 재건축 규제를 풀어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국제와 청실은 최근 잇따라 대략적인 재건축계획을 세워 구청에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했다. 국제는 2003년 12월 추진위 구성 이후, 청실은 같은 해 5월 조합설립 이후 사업이 멈춰 있었다. 정비구역 지정은 공식적으로 재건축 대상지로 인정받는 것으로, 안전진단 등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청실 조합 관계자는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고 건물이 낡아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전했다. 국제 추진위 관계자는 “10대의 낡은 승강기를 교체하는 데만 4억~5억원이 들 정도로 유지관리비가 많이 들어 재건축을 빨리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서초구 서초동 무지개는 2003년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하고 지난해 5월 추진위를 만든 뒤 정부 정책을 지켜보다 최근 정밀 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지난해 착공 전인 관리처분 단계에서 조합원 간 갈등 등으로 사업이 멈춰 있는 서초구 일대 중층 단지들도 사업을 계속 미루기 힘들다. 9월 일반분양분의 가격을 규제하는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12월 전 관리처분을 신청해야 상한제를 피할 수 있다. 일반분양분이 100가구가 넘는 단지가 적지 않다. 반포동 한신1차(198가구)·서초한양(168가구), 잠원동 반포우성(106가구)·한신6차(120가구) 등이다. 이들 조합 관계자는 “상한제 적용을 받으면 추가 부담금이 상당히 늘 것으로 보여 반대하는 주민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 합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곳곳에 장애물=택지 부족으로 강남권에 새 아파트 공급이 어렵기 때문에 재건축 사업 재개는 투자자나 주택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하지만 겹겹이 쳐져 있는 규제에 주의해야 한다. 조합원 명의변경 제한 때문에 2003년 말 이전에 조합이 설립된 단지를 구입하면 완공 후 입주 때까지 팔지 못한다. 현재 조합설립 이전 단지는 조합설립 이전까지만 자유롭게 거래되고 그 이후에는 아예 팔 수 없다.

 용적률 규제 등으로 지금보다 더 큰 집을 배정받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일반분양분이 많지 않은 단지에선 공사비의 대부분을 부담할 각오를 해야 한다. 올 12월 이전 관리처분을 신청하지 못하면 일반분양 수입이 20% 정도 줄어 추가 부담금이 늘어난다. 서초구 양지공인 안용준 사장은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이 확실한 단지를 선택하는 게 안전하고 주민들 간 이견이 없어야 사업이 순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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