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사면 거부한 사르코지의 법치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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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혁명기념일’(7월 14일) 대사면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해마다 혁명기념일이 되면 대통령이 대사면 명령서에 서명하는 것은 프랑스의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이를 깨겠다는 것이다. 사법부가 범죄자들에게 벌을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인이 봐주는 식으로는 법치주의를 확립할 수 없다는 것이 그가 밝힌 이유다. 그래서 올 혁명기념일을 앞두고 약 3000명에 대한 대사면 건의가 있었지만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사르코지는 프랑스 대통령의 ‘당선사례’로 굳어진 교통범칙금 면제 조치도 거부한 바 있다.

 그의 결정에 대해 프랑스의 전통적 가치인 ‘톨레랑스(관용)’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그보다는 포퓰리즘을 거부한 의미있는 결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프랑스 국민의 73%가 사르코지의 결정을 지지하고 있다. 보편적 도덕률로서 톨레랑스는 소중한 가치이지만, 범법(犯法)에 관한 한 톨레랑스가 개입될 여지는 없다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생각인 것이다.

 사르코지는 프랑스를 경쟁력 있는 21세기형 현대국가로 탈바꿈시킨다는 비전 아래 공무원 감축, 대학 개혁, 공공파업 시 최소 서비스 유지 등 각종 개혁안을 내놓았다. 이어 그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대사면권을 스스로 포기하면서까지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법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서는 의도한 개혁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본다.

 대통령 입에서 “그놈의 헌법” 소리가 나오고, 불법ㆍ과격 시위를 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것이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현실이다. 대통령이 툭하면 사면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다. 뇌물 받고, 탈세와 횡령을 하다 감방에 가도 얼마 안 가 사면으로 면죄부를 주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인기와 정서에 영합하는 포퓰리즘과 ‘떼법’이 판을 치고, 법 위에 돈과 권력이 있는 한 법치는 요원하다. ‘새로운 프랑스’ 건설을 기치로 내건 사르코지가 법치를 앞세운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