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개혁 밀어붙이기 시동/부정부패 척결 통일보다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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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정기관 제기능 못해 대수술 불가피 판단/“통치자의지가 문제” 5년 임기내 발본 선언
김영삼차기대통령이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 특유의 강공책이 취임을 전후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하는 징후들이다. 김 차기대통령이 11일 취임직후 사정기관부터 사정에 손대겠다고 밝힌 것은 그의 개혁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다. 부정부패척결은 이 시점에서 통일보다 더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 김 차기대통령의 의지다.
○…김 차기대통령은 1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마련한 부정방지위 설치법안을 재검토하도록 지시하면서 『성역시돼온 고위사정기관에 대해서도 사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여러갈래로 추측·관측돼온 부패척결에 대한 그의 구상을 농축한 것이다.
김 차기대통령은 이날 『부정부패척결은 대통령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면서 『나는 취임하는 그날부터 강력한 사정의지를 보일 것이며 대통령 재임 5년 내내 이같은 의지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이런 식으로 하면 부정부패척결은 퇴임전에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우선 그가 이날 밝힌대로라면 차기정부의 부패척결 수술대에 맨 먼저 오를 대상은 기존 사정기관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가 최근 측근들에게 『부정부패 일소라는 중임을 맡은 고위사정기관이 더 문제』라며 특히 검찰·감사원을 몇차례 지목한 것은 이러한 예측을 더욱 뒷받침한다. 그는 그동안 이들 사정기관이 특권의식을 지닌채 정권유지 차원의 왜곡된 사정활동을 해오거나 관계자들이 개인적인 세력부식 또는 취리의 수단으로 사정업무를 악용해온 결정적인 사례들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문에 그가 겨냥한 것은 기존 사정기관의 기능약화가 아니라 기능회복이며 정상화다. 그는 최근 정주영씨의 현대비자금사건을 처리하는 검찰의 눈치보기 관행,각종 공무원비리에서 감사원·검찰 등 사정기관 관계자들이 제외되는 「성역」의 존재 등에 크게 실망하고,이대로는 안되겠다는 확신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부터 「감사원 제4부론」을 강조하면서 실은 감사원에 대한 일대 수술을 구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앞장서 사정기관의 비리부터 챙기는 것이 효과적인 「윗물맑기 운동」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 차기대통령은 특히 야당에서 정권내부를 오래 지켜보는 과정에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정기관의 문제점을 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부패 문제와 관련,김 차기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철학은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만사가 최고통치권자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의 측근들은 『김 차기대통령은 그동안 부정부패를 일소하지 못한 것은 법·제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지 못하고 정통성없는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때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2공이후부터 통치권자가 갈릴 때마다 강조됐던 사정의지가 금세 약해지고 부정부패는 오히려 더욱 만연·심화해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2공에서 장면정권이 집권과 함께 정치권과 결탁한 각종 경제브로커를 제거하겠다고 했으나 정치자금을 무기로 한 부패경제인의 로비·역공작에 말려들어 부정부패척결은 흐지부지됐고 급기야는 5·16세력에 쿠데타 빌미를 제공한 사실을 체험했다. 또 3∼6공때도 최고통치권자의 부패척결 의지 표명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실천은 늘 「강·약·약」의 패턴으로 끝나버린 것을 염두에 넣고 있다는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가 이날 인수위의 부정방치위 설치안에 대해 『옥상옥이 되지 않도록 하라』면서 『내가 깨끗하면 반드시 부정부패는 척결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기구보다 통치권자의 의지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패척결 기구와 관련,김 차기대통령은 부정방지위는 대통령직속으로 두기는 두되 기존 사정기관과의 조화를 원하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그가 사정업무협의·조정권,관계기관에 대한 자료제출 및 직원파견 요청권 등 준집행기능을 명시한 인수위측의 부정방지위 설치법안을 재검토하라고 한 것도 이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인수위측 부정방지위가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기는 하나 어차피 수사권이 없으므로 부패척결을 철저히 밀어붙이는 데는 한계가 있고 도리어 이같은 부정방지위로 인해 기존 사정기관들이 의욕을 잃고 위축될 경우 부패척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특히 5공때 사회정화위는 인수위측의 부정방지위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었으나 통치권자의 왜곡된 의지로 인해 부패척결에 별효과가 없었던 경험도 참고됐다.
따라서 민자당 정책위에서 재검토될 부정방지위는 사정기획·부패예방대책 강구 등의 일을 하는 자문기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부정방지위가 이같은 기능을 갖게 되더라도 당분간은 상당한 힘을 행사할지도 모른다. 즉 김 차기대통령이 사정기관들을 사정할때 부정방지위에 조사를 맡길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관측이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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