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사용보다 협상우선/예상보다 신중한 미 보스나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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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족·지역 복잡해 제2월남전화 우려/“파병해도 다국적군으로” 한발 물러서
빌 클린턴 미 행정부가 10일 유고사태 해결안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워런 크리스토퍼국무장관이 밝힌 미국의 안은 당초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매우 신중하고 점진적인 안으로 드러났다.
클린턴대통령은 선거유세 과정에서 조지 부시행정부가 유고사태에 개입을 피하고 있던 것을 비판하면서 최소한 미군에 의한 공중폭격,주된 피해자인 보스나 회교도에 무기를 제공하는 안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었다.
크리스토퍼국무장관이 밝힌 미국의 해결안은 무력개입보다는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크리스토퍼국무장관은 현재 유엔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협상을 적극 지지하며,이 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미국이 별도의 특사를 임명한다는 내용과 함께 유고사태는 무력이 아닌 관련자들의 합의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밖에 현재 유엔결의로 설정돼 있는 비행금지구역의 준수,세르비아에 대한 경제적 제재,인도주의적 구호의 확대 등을 재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초점이 돼온 미국의 무력개입 여부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으며 그것도 평화협정 준수를 강제하기 위한 경우에만 사용토록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세르비아·보스나·크로아티아 등 관련 당사자들이 유엔 중재로 평화안에 합의할 경우 합의된 평화안의 이행을 위해 미군을 파견할 수 있으며 그것도 유엔의 다국적군 일환으로만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즉 유고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군사개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협상 결과 그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서만 파병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걸프전 때나 소말리아사태때 미군을 직접 파병했던 것과는 다른 형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도 부시행정부에 비해 진전된 입장이라는 평가가 있다. 부시행정부는 유고사태가 미국의 국익과 무관하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즉 중동지역은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의 원유공급지라는 점 때문에 미국이 걸프전을 치를 수 밖에 없었으나,유고의 경우 미국 이해에 아무 관련이 없으며 유럽국가들이 스스로 지역문제를 해결하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클린턴행정부는 미국이 유고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우선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인도적 입장외에도 전략적 관점에서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고내전은 일종의 국경분쟁으로 유엔이 인정하고 있는 국경을 개별국가들이 분쟁으로 해결하려 할 경우 유엔체제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현재 유엔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협상이 성공할 경우 약 2만5천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이 필요하며 이 가운데 대부분은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국가가 맡고 미국은 5천명 정도를 파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단독파병을 꺼리는 것은 유고의 상황이 민족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잘못 말려들었다가는 제2의 월남전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때문이다.
클린턴대통령은 선거유세때는 무력개입을 주장했지만 취임후 현지사정을 검토해본 결과 역시 부시행정부의 판단이 맞았다고 시인한 셈이다.
크리스토퍼국무장관도 유고지역이 얼마나 복잡한가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 무력개입이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클린턴행정부가 무력개입에 소극적 입장으로 돌아섬으로써 유고사태는 앞으로 전적으로 유엔의 협상에 의존하게 됐으며 당분간 극적 해결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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