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64. 김종덕 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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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스윙이 부드러운 김종덕 프로.

 나는 일본골프의 덕을 많이 봤다. 내가 골퍼로 명성을 얻은 것도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면서 세계 골프의 흐름을 익혔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 뒤를 이어 일본에서 당당하게 활약하고 있는 김종덕 프로 이야기를 하겠다.

 내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으로 있던 1985년 프로테스트 때였다. 나는 대회를 총괄 지휘하면서 선수들을 살펴보기 위해 마커 자격으로 골프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옷차림새부터 촌티가 나는 한 시골뜨기 청년을 발견했다. 그가 사용하는 공도 아마추어나 쓰는 투피스 볼이었다. 투피스 볼은 백스핀이 잘 걸리지 않는다. 그가 지금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종덕 프로다.

 그런데 그의 스윙은 부드러웠다. 몸을 비틀어 때리는 ‘보디 턴 스윙’을 했다.나는 그에게 “너 프로가 되려면 공부터 바꿔라. 그거로 되겠니”라고 충고했다.

 더 한심한 건 그가 스윙 외에는 다른 골프 기술이 없었던 것이다. 프로에 도전하려고 대회에 나온 그가 어프로치 샷을 전혀 할 줄 몰랐다. 내가 보기에는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공이 그린 근처에만 가면 무조건 퍼터를 잡았다. 퍼터는 일명 ‘텍사스 웨지’라고 한다. 그린 근처에서 쓰기에 가장 안전한 클럽이 퍼터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퍼팅을 하기 어려운 곳에서도 퍼터를 잡았다. 그런데도 그는 뜻밖에 파를 기록하면서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만금 그의 플레이는 독특했다. ‘충청도 촌놈이 프로가 돼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
 그의 성장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89년 쾌남오픈에서 첫 우승을 하더니 어느새 한국프로골프의 간판선수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10승을 거뒀고, 일본 무대에서 4승을 올려 정상급 골퍼로 자리 잡았다. 정말 자랑스러운 후배다.

 가끔 그는 한국에 나와 경기를 한다. 늘 여유있는 모습으로 후배들을 이끈다. 그는 양용은·최경주·허석호·장익제 프로 등 한국 선수들이 일본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청각장애인 골퍼 이승만의 첫 골프 스승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그를 좋게 평가한다.

 김종덕은 어렸을 때 태권도 유단자가 됐다고 들었다. 그는 “프로골퍼가 되는데 태권도의 힘이 컸다”고 했다. 발차기 동작에 익숙해서인지 그는 하체 이동을 잘한다.

 나는 골프계 후배들에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김종덕처럼 밖을 보고 뛰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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