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족(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족」이란 본래 명사의 뒤에 붙어 한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같은 혈통의 무리를 뜻하지만,어떤 공통된 특징을 형성하는 같은 종류의 사람들을 일컫는데 쓰이기도 한다. 히피족이니 여피족이니,혹은 폭주족이니 펑크족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어느 사회나 골칫거리인 그 「족」들 가운데는 제비족처럼 「자생적」인 것들도 있지만 대개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생긴 것들이 변형된 모습으로 우리나라에까지 흘러 들어왔다.
사회학에서는 이들 「족」들을 가리켜 「동년배 집단」(peer group)이라고 부른다. 전통지향적 사회구조가 붕괴되고 가족이나 친족집단의 유대가 약화되면 청소년들은 기존의 질서와 규범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또래의 집단에서 동일감내지 일체감을 찾으려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집단속에서 소속감을 구하려 하고 개인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려 하는데 대개의 경우 「동년배 집단」은 비행청소년 그룹으로 발전한다는 이론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또하나의 자생적 동년배집단이 등장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른바 「오렌지족」이다. 이들 역시 몇가지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20세 안팎이며,부유층 자제들이며,퇴폐적인 생활을 즐긴다는 것 등이다. 이들은 괴상한 차림새에 수천만원짜리 고급승용차를 몰고 유흥가를 휩쓸고 다니면서 약복용과 성적 탈선을 밥먹듯 한다.
「오렌지족」으로 정착되기 전까지 이들은 「압구정족」이라 불리거나 주로 심야에 배회한다고 해서 「부나비족」으로 불리기도 했다. 「오렌지족」으로 불리기 시작한 까닭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오렌지를 들고 다니다가 마음에 맞는 소녀를 보면 그것을 주어 의중을 떠보는 그들 나름대로의 풍습에서 생겼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짙은 화장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파트너를 구하는 젊은 여성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한 국어학자는 「구하기 쉽고,먹기 좋고,맛좋고,색깔좋은」오렌지의 특성이 그들 동년배집단의 생리를 반영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들중 5명이 또 히로뽕 상용혐의로 구속됐다. 그들의 부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들인지 궁금하다.<정규웅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