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오락 발작」 경각심 갖자(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자오락기에 의한 어린이 간질발작으로 보이는 첫 사례가 국내에서도 발견됨으로써 사회적 경종을 울리고 있다. 26일 서울 공항동에 사는 한 어린이가 일본 닌텐도사 제품인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전자오락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진 사건이 발생했다. 아직은 이것이 전자오락기에 의한 광과민성 간질발작이라는 의학계의 최종결론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일본·유럽 등지에서 동사제품의 오락기를 사용한 어린이들중 일부가 같은 증세의 발적을 일으키는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일단 이 어린이도 같은 원인의 발작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와 유사한 발작환자들이 지난 2∼3년 동안 여러 종합병원에서 상당수가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 전자오락기의 섬광자극에 의한 발작이란 임상보고가 국내에서 공표되지 않은 것은 외국의 사례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 원인규명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잔자오락기에 의한 피해의 실상은 알려진 것보다 의외로 깊고 광범위할지도 모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지난 89년 서울 YMCA의 조사만 봐도 우리나라 청소년의 57%가량이 전자오락을 습관적으로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사회가 청소년들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해로운 환경을 그대로 방치해두고 있는 셈이다.
우선 전문가들의 전자오락기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있어야겠다. 서울에도 무려 4천군데가 넘는 전자오락실이 성업중이며,가정의 컴퓨터를 이용한 것까지를 합산하면 전자오락게임의 확산범위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광범위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전자오락문제를 청소년들의 비행이나 탈선의 시각에서만 취급했을 뿐 그것이 끼치는 건강이나 질병의 차원에서는 별로 접근하지 못했다. 외국에서 발작환자발생이 잇따르자 국내사례가 보고되고,과거에 있었던 유사한 증세의 환자까지도 같은 원인으로 진단을 소급하는 뒷북만 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환경은 날로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문명의 「이기」에 의해 변화되고 있다. 비단 전자오락기 뿐만이 아니다. 각종 전자·전기기기에서 발생하는 전파나 방사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우리 생활주변을 휩싸고 있다. 이들 물질들이 과연 우리에게 이기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는지,아니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공해」로서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의 피해사례가 발견되면 이에 맞장구나 치고 있을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피해실태를 파악하고 대응수단을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