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눈앞에 둔 '남미 힐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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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현역 퍼스트 레이디가 차기 대통령 선거에 유력 후보로 출마한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54.사진) 상원의원이 10월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 집권 페론당 후보로 출마한다고 2일 뉴욕 타임스(NYT)를 비롯한 외신들이 보도했다.

남편인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재선 출마를 포기하고, 처가 대통령에 당선할 수 있도록 선거운동을 지원하겠다"고 1일 발표했다.

크리스티나 상원의원이 대통령에 당선하면 키르치네르 부부는 세계 첫 '전현직 대통령 부부'가 된다.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페르난데스는 46.2%의 지지율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기간 중 매년 8%의 경제성장을 이룬 남편의 인기도 한몫해 1차 투표에서 무난히 당선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르헨티나에선 대선 1차 투표에서 45%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득표자를 놓고 결선투표를 벌이게 된다.

이달 중순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갈 페르난데스는 이미 정.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고 유럽과 남미를 순방하는 등 대권을 향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변호사 출신인 페르난데스 상원의원은 미모와 재능을 갖춰 '아르헨티나의 힐러리'로 불리며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다.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결혼 전 성인 페르난데스를 계속 쓰고 있어 독립적인 여성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1989년 지방의원에 당선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03년 대통령 선거에서 남편의 참모로 활동했고, 2005년에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에두아르도 두알데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다 곤살레스를 누르고 상원의원에 당선해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워싱턴 포스트는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자기 대신 부인을 대선에 출마하게 한 것은 레임덕의 피해를 피하면서 부부의 장기집권을 노린 것일 수 있다고 2일 보도했다.

집권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는 등 집권 말기 레임덕에 빠진 키르치네르를 대신해 부인이 이번 대선에 나서고, 2011년 선거에선 다시 자신이 출마한다는 복안이라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4년 중임제이므로 잘만 하면 레임덕을 피해 부부가 번갈아가며 16년을 집권할 수 있다.

선거를 통한 정권 이양은 아니었지만 아르헨티나, 그것도 페론당에는 남편의 대통령직을 부인이 승계한 전례가 이미 있다.

74년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의 셋째 부인인 이사벨리타 페론은 남편이 사망한 뒤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페론의 둘째 부인 에바 페론은 46년 남편이 대통령에 오른 뒤 사실상 최고 통치자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권력을 부인에게 넘기는 것이 페론당의 전통이냐"라는 비아냥이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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