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후원회|김용일<서울대병원 제2진료부원장·병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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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해 말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원에서는 매우 감격스런 행사가 있었다.
강당에 가득 모인 백혈병 완치 어린이와 어머니들이 의료진의 축하를 받으면서 동시에 자리를 함께 한 치료 중에 있는 어린이와 어머니를 격려해 주는 백혈병후원회 발족 첫돌 잔치였다. 그 중엔 완쾌된 지 2∼3년 된 유치원 어린이로부터 10년이 넘는 고등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환한 얼굴들의 목에 완치 기념메달이 걸렸고 이들을 부럽게 바라보는 환자들의 어머니 눈에서도 자식의 완쾌를 기필코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필자가 의학을 처음 배우던 60년대만 해도 진단된 지 3개월 이내에 사망한다던 이 불치의 병이 이날의 모임을 통해 완치를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이날 영광의 주인공들이 현재 앓고 있는 어린이와 어머니들에게 용기를 심어 주는 정경은 정말 눈물겨웠다. 더욱이 육군 맹호부대장병 1천여 명의 헌혈증서가 전달되면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백혈병이란 피의 암, 그 중에서도 백혈구의 암이다. 정상적으로 혈액 입방mm당 7천5백 개 정도의 백혈구가 5만개, 10만개로 늘어가면서 백혈구로서의 본래 기능, 즉 식균작용이나 면역방어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돼 세균감염·출혈 등으로 사망하는 치명적인 병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아직 그 원인을 잘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3백55명 가량의 어린이가 림프구성 백혈병에 걸리고 있으나 최근 치료 성적이 향상돼 체념과 포기 속에서 좌절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치료약값이 매우 비싸고 부모나 의료진의 꾸준한 보살핌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속에서 의학과 사탕이 접목돼 용기를 북돋워 주는 이런 프로그램은 매우 소중하다.
어린이병원의 교수·의사·간호사·영양사가 일체가 되어 이들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운동에 나서자 완치된 어린이의 부모와 독지가들이 참여하면서 백혈병후원회가 결성된 것이다.
질병은 약만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이 행사는 사탕과 격려가 질병 경과를 단축시키며, 또 희망을 가지고 치료에 적극 참여케 해준다는 가장 좋은 본보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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