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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해 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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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의 참의원 선거는 3년에 한 번씩 실시된다. 임기는 6년이지만 정원 242석을 한꺼번에 다 뽑는 게 아니라 절반인 121석씩 3년마다 교대로 선거를 치른다. 지방자치단체 선거는 4년 주기로 실시된다. 이 때문에 3과 4의 최소공배수인 12년에 한 번씩은 지자체 선거와 참의원 선거를 같은 해에 치르게 된다. 결국 돼지띠가 되는 해마다 그렇게 된다.

여기에 착안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해 낸 사람은 아사히 신문의 베테랑 정치기자 이시카와 마스미(石川眞澄)였다. 그는 1947년부터 95년까지 60년간 다섯 번의 돼지해 선거 동향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돼지해에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는 투표율 저하가 두드러지고 보수 정당(55년 이후는 자민당)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공통점이 발견됐다.

이시카와 기자는 이 같은 징크스를 단순한 우연으로 보지 않고 자민당의 득표 전략과 연결 지어 분석했다. 자민당의 선거운동은 지역구에 대대로 뿌리를 두고 있는 지방 의원들의 활동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이 지역 밀착형의 인맥과 모임을 활용해 자민당 지지를 독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돼지해의 경우에는 지방 의원들이 명줄이 걸린 4월의 지자체 선거에 전력투구한 나머지 7월의 참의원 선거에는 소극적으로 돌아선다고 이시카와는 설명했다.“어차피 내 선거는 끝났는데 뭘…”이란 식으로 긴장감이 떨어져 선거운동에 소홀하다 보니 투표율이 내려가고 자민당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불교계 종교단체가 지지 기반인 공명당이나 공산당 등 조직 결속력이 탄탄한 정당은 득표율이 올라갔다. 이시카와는 『전후정치사』란 책에서 이 같은 현상을 ‘돼지해 현상’이라 이름 붙였다.

이달 29일에 참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취임 후 처음 맞는 국회의원 선거를 돼지해에 치르게 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로서는 썩 달갑지 않은 징크스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은 더욱 심각해 보인다. 5000만 건을 넘는 국민연금 납부 기록이 통째로 분실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에 가깝게 곤두박질치고 있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2004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만큼은 야당에 1석 뒤졌다. 공교롭게도 그 패인은 유력 정치인들의 연금 미납 발각과 미숙한 대응에 따른 민심 이반이었다. 이러다가 돼지해 징크스에 이어 연금 징크스까지 생기는 건 아닌지 이번 선거에 쏠리는 관심은 이래저래 뜨겁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