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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도대체 왜 존재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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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기관장 연봉의 평균이 1억8659만원이고, 감사도 평균 1억5055만원을 받는다. 산업은행은 직원의 평균 연봉이 8600만원이다.
출근도 하지 않는 직원에게 2년 이상 월급을 주는 공기업도 있고, 비자금을 조성해 노조 집행부에 향응을 제공하는 곳까지 있다.

공기업은 원래 공공성과 수익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 이는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보이나 이를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성취해야만 공기업이 사는 길이다. 공공성만 강조하며 비효율적 경영을 하는 공기업은 정부와 국민에게 부담을 준다. 결과적으로 공공성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공기업들은 두 마리 토끼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는커녕 공기업 종사자들의 사적 이익만 극대화하는 ‘생선가게의 고양이’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우선 공공성이 내던져지는 현장을 보자.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에서는 승진 대상자가 승진심사위원이 돼 본인도 포함된 대상자들을 심사하다가 자신을 1급으로 승진시킨 사례가 있었다. 한국건설관리공사는 경영적자로 노사가 임금동결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건비 보전 목적으로 사규에도 없는 특별격려금을 지급했다. 수익성의 모습도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정부가 평가한 2006년 경영실적 우수 상위 10개 기관 중 순이익이 증가한 기관은 3개밖에 없고, 전년보다 부채가 줄어든 기업은 2곳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부채가 큰 폭으로 늘었다. 결국 부채 비율도 심각한 수준이 됐다.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경우 부채 비율이 675.9%로 자기자본보다 무려 6배 이상 많다.공기업 부채 규모는 2002년 195조원이었는데 2006년 296조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다. 그런데도 288개 공공기관의 2006년 말 인원은 2002년에 비해 2만5686명(12.1%)이나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공기업들은 이처럼 공공성과 수익성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같은 사태의 책임은 역대 정권들이 골고루 나눠가져야 하는 것이지만 특히 노무현 정권에 결정적 책임이 있다. 노 정권은 혁신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는데 정작 등잔 밑이 어둡다고 코 밑에 있는 공기업들은 혁신하고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인 것이다. 이 정권은 공기업 문제를 다루면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엉성한 해법에 의존했다. 정권의 공기업 혁신은 공기업 내 이사회·감사위원회와 같은 내부 지배구조와 공기업 임원의 인사·관리감독을 맡는 외부 지배구조에만 집중됐다. 공기업 문제 해결의 세계적 대세는 민영화인데도 정권은 여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외환위기 하에서 활로를 찾아야 하는 비상상황이기는 했지만 김대중 정부는 공기업 8개 기관의 민영화를 단행했다.

그런데 참여정부 들어서는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논의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고이즈미 내각이 추진한 민영화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고이즈미는 노동계와 공직사회 그리고 정치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기업 163개 가운데 136개를 폐지·민영화·독립법인화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정공사 민영화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도 발전회사를 민영화하는데 노 대통령은 전력과 가스산업 민영화 방안에 노조가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이자 ‘망(網) 산업의 민영화 중단’을 지시하고 말았다.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우리 사회에 불건전한 메시지를 준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경쟁이 빡빡한 대기업보다 오히려 경쟁이 느슨하고 간섭이 거의 없는 공기업을 선호한다고 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젊은 세대가 도덕적 해이에 눈을 감는 인생을 향해 전진한다는 게 옳은 것인가. 차기 대통령은 사회의 기강을 잡는 각오로 공기업 문제를 다뤄야 할 것이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한국정책과학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