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감동 뭉클 구족화가들 연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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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장애인들 입·발로 “혼의 그림”/3년째 통신판매… 호응 확산
몇년전 국내에서도 상영됐던 영화 『나의 왼발』의 주인공처럼 손 대신 발이나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들이 3년째 연하장을 제작,자활의 길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여러 사연으로 손을 쓸 수 없는 신체장애에 이르렀으나 이를 극복해낸 이들의 연하장은 손으로 그린 것과 구별이 안될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된 유화·채색 동양화 등이 주류.
감전사고로 두팔을 잃은 김명기씨(37)가 발가락 사이에 붓을 끼워 그린 꽃그림,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한미순씨(38·여)가 붓을 입에 물고 펼쳐낸 홰치는 닭의 그림 등 연하장 한장 한장마다 불구를 딛고 홀로서기하려는 의지가 담겨 단순한 연하장이상의 감동을 준다.
세상에 구족화가란 이름이 생겨나기는 입으로 그림을 그렸던 독일 화가 에리히 슈테그만이 56년 「세계구족화가협회」를 결성한 것이 계기. 우리나라에서는 90년 6명의 장애인 화가들이 모여 「한국구족화가협회」를 탄생시켰다.
대부분 두팔을 못쓰거나 전신마비의 장애인인 이들은 생활을 꾸려가고 예술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기금 마련이 시급하다고 보고 90년말 연하장 10만세트(1세트 5천5백원)를 만들어 우편판매회사를 통한 직접 판매방식으로 일반인들에게 발송했다. 「동봉한 지로용지를 통해 대금을 송금해주든지,반품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88장애자올림픽이 끝난 뒤여서인지 일반인들의 호응이 좋아 1만8천세트의 대금이 송금돼 제작·발송비용 3천만원을 빼고도 6천9백만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용기를 얻은 이들은 91년말에는 6천원씩으로 가격을 올려 30만세트를 제작,7천여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말에는 9천원으로 다시 가격을 올려 30만세트를 만들어 1월초 현재 3만5천세트의 대금이 송금돼 이미 1억원 이상의 이익을 올린 상태다.
판매 수익금은 1명이 늘어 7명이 된 회원들의 생활을 돕기 위해 정회원·준회원·학생회원 등 등급에 따라 매월 2백50만원에서 20만원씩 차등 지급된다.
준회원인 한씨는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지체부자유 고통에서 벗어나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됐다』면서 『작은 연하장에 불과하지만 장애인들의 혼을 담은 작품을 통해 정상인들이 따뜻한 정을 나누기 바란다』고 말했다.<박장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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