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대표 「독선」에 반기/김동길의원 왜 사퇴 선언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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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약속 뒤집고 조언 안먹히자 결심/경선주장 나와 「2인자」 입지흔들
국민당의 두번째 얼굴이랄 수 있는 김동길최고위원이 6일 최고위원직을 버리고 사실상 당을 떠날 각오로 반기를 들었다. 정주영대표가 가장 믿고 아꼈던 김 최고였기에 20분간 독대해 말리고 붙잡았지만 단호하게 뿌리쳤다. 그만큼 김 최고의 반기는 확고부동했으며,이미 준비해온 듯했다.
김 최고는 이미 5일과 6일 아침 두차례에 걸쳐 「정 대표의 대선출마 자체가 가장 큰 실수」였으며,따라서 「지금이라도 국민에게 사과하고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공개리에 주장했다. 만약 이같은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다면 『내가 떠날 수 밖에…』라는 결심도 비쳤었다. 김 최고는 6일 오전 8시 최고위원·당직자 연석회의에서 이같은 뜻을 피력하고 최고위원직 사퇴를 천명했다. 김 최고는 나아가 기자들에게 『평당원으로 일단 남겠다. 그러나 그것도 못마땅하게 되면 탈당하겠으며,더 못마땅해지면 국민당의 이름으로 당선된 의원직도 버릴 수 있다』고 밝히고 당사를 떠났다.
김 최고가 회의장을 박차고 자기방으로 돌아가자 정 대표도 곧바로 따라나와 독대,『당신이 떠나면 당이 박살난다』며 잔류를 호소했다. 김 최고의 노기 띤 언성만 흘러나왔으며,20분만에 정 대표는 설득을 포기하고 나왔다. 뒤이어 김정남총무가 설득에 나섰으나 곧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김 최고는 이같은 행동을 「정치발전」이라는 명분에서 설명하고 있다. 김 최고가 표면적으로 강경한 목소리를 높여가며 주장한 것은 「정대표의 2선후퇴와 당발전기금조성=국민당의 공당화=정치발전」의 등식이다. 김 최고는 우선 정 대표의 출마자체가 잘못의 출발이라고 역설한다. 당초 약속대로 2선에서 킹메이커역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정 대표가 일단 출마한 상황에서 「대표부재」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대선승리에 진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선에서 패배한 현시점에서 정 대표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패배할 것을 굳이 「압승한다」고 국민을 속였던 것을 사과하고 책임지라는 얘기다. 그 책임은 곧 앞으로의 정치발전을 위한 2선 후퇴와 기금조성이다. 김 최고는 이같은 뜻을 여러차례 정 대표에게 전했으나 확실한 반응이 없자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보고 사퇴를 결행한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정 대표의 독선적 당운영과 약속을 여반장으로 뒤집는 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국민당의 당권과 직결된 문제다. 김 최고는 대선패배직후 정 대표로부터 『부덕의 소치를 인정한다. 앞으로 당을 맡아달라』는 부탁겸 약속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 대표가 김 최고에게 약속한 「2인자」의 자리는 양순직·한영수최고위원 등의 「경선」주장으로 제동이 걸렸다. 정 대표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때 이후 김 최고는 주요회의에 불참하는 등 「반기의 결심」을 구체화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결의에 불길을 더한 것은 새한국당과의 협상처리문제. 정 대표는 김 최고에게 이종찬의원의 영입교섭을 맡긴 상태에서 측근인 이병규특보를 따로 밀사로 보내 무리한 조건으로 전격 타결했었다. 그러고는 사실상 통합이 불가능해지자 다시 김 최고에게 뒤처리를 부탁하는 결례를 한 것이다. 이밖에도 대선운동중 『상대후보를 노골적으로 욕하지 말라』는 등의 조언이 전혀 수용되지 못했던 점도 지적될 수 있다.
이번 내분은 기본적으로 정 대표 자신이 키워온 모순의 폭발이기에 이같은 폭발은 정 대표 스스로의 대변신이 없는한 계속 국민당속에 잠재해 있을 것으로 보인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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