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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다양한 문화수용방안 모색|「한국비디오문화10면 점검」세미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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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비디오를 보는 것이 과연 문화행위일수 있는가. 놀랍게도 한국의 문화환경은 이 초보적인 질문에 대해서조차 명쾌한 답변을 내리기 어렵게 한다.
80년대 초반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이 새로운 매체는 이제 우리 삶의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현시점에서는 비디오를 포르노 내지 황폐화된 감수성의 동의어로 보는 낡은 관점만큼은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창조적인 문화활동의 촉매제로 자리잡기 위해서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멀다.
비디오시장의 대부분이 영화소프트이고 그나마 그 태반이 할리우드나 홍콩의 오락영하에 의해 잠식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인 것이다.
29일 YWCA강당에서 벌어진 「한국 비디오문화 10년을 점검한다」세미나는 표류하고 있는 비디오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 대응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첨단매체시대의 영상문화정책」이라는 발제 논문을 발표한 이중한씨(서울신문 논설위원)는 『비디오 보급이 7백만대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비디오문화는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자못 충격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 그는 비디오란 매체가 제시하는 여러 가능성, 특히 다양한 문화 수용의 도구라는 가능성은 배제된 채 「오락영화 보기」라는 낮은 차원에서 비디오문화가 영위되는 한 그것은 「문화적 몽매함」이상이 되지 못함을 지적한다.
다국적 기업에 의한 영상소프트의 다양화·복합화라는 추세는 영상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크게 넓혀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문화향수의 신장이라는 소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수용 능력의 향상이 근본적인 걸림돌이다. 첨단매체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용능력이 높아지지 않는 한 그것이 「감수성의 증진」이라는 목표에 접근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이씨는 그를 위해 참여하는 대규모 사회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모든 문화영역에서의 비디오 그램 제작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연극·음악회 등 공연영역 뿐 아니라 미술관·박물관 등의 문화영역까지 비디오로 제작되어 유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한국문화의 데이터 뱅크가 조속히 마련되어야한다』고 제안한다. 정보화사회에서의 문화적 격차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한 그는 그러므로 『우리 문화유산의 여러 요소들을 정보화사회의 문화언어로 전환시키지 않는 한 한국문화는 더욱 왜소해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한국 비디오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발표한 최광철씨(우일영상 이사)는 그동안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비디오산업이 『현재 과도기적인 진통을 겪고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메이저 사들이 국내 대기업들과 제휴해 본격적인 직배에 나선 데다가 이들 중 일부는 직접 판매체제까지 갖추게 됨에 따라 중소업자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기존도매상체제도 동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세업체들은 『복제전문업체로 전환하던가, 주문자제작(OEM) 판매에 주력해 살아남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을 되살리기 위한 대책으로 그는 우선 『소프트 수입 선이 다변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현재 미국·홍콩영화가 전체시장의 75%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추세가 더욱 심화될 경우 자본력이 달리는 중소업체로서는 도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최씨는 또 『기획물 내지 뮤직 비디오 등의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올해 김현식·서태지 등의 뮤직비디오가 좋은 반응을 얻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분야는 새로운 시장확대에 촉진제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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