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 철거현장 뒷짐 진 공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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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제 총까지 등장한 서울 상도2동 철거현장. 부서진 주택 잔해 위에서는 세입자와 경찰의 대치 상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상 15m의 철제 망루에서 20여명의 세입자가 찬바람 속 '고공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농성을 시작한 지 1년반. '외부 세력'까지 가세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벽돌.쇠파이프에 사제 총을 앞세운 저항에 공권력은 속수무책이다. 경찰은 이들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 영장까지 발부받았지만 집행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고 있다.

이에 따라 2005년 완공 예정인 아파트 공사는 기약 없이 지연되고 있고, 입주 예정인 주민과 아파트 건설업체의 피해가 쌓이고 있다. 소수의 극한 투쟁에 공권력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뒷짐 진 공권력=경찰은 농성 주동자 15명에 대해 발부받은 체포영장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철거에 나선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사제 총탄을 쏜 장본인들이다. 관할 서울 노량진경찰서장이 지난 8일 전.의경 20여명을 이끌고 영장집행을 시도했다가 세입자들이 벽돌.골프공 등을 던지며 저항하는 바람에 30분 만에 철수했다. 그나마 이것이 영장집행을 시도해본 유일한 사례다. 농성자들이 망루 인근의 빈집을 정리하는 철거반원에게 고탄력 고무를 이용해 화염병.골프공을 쏘고 있지만 공권력은 요지부동이다.

경찰은 "농성자 가운데 할머니 3명과 네살짜리 어린이 3명이 포함돼 있어 섣불리 진압하다가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농성 세입자들의 '인간 방패'작전에 속수무책임을 자인한 셈이다. 경찰은 농성장에 가스.전기 공급을 끊는 '고사작전'을 시도했지만, 망루 안엔 수개월치의 식량이 비축돼 있다. 소형 발전기를 통해 전기까지 사용하고 있다.

농성 세입자들은 전혀 굽힘이 없다. 복면을 쓴 한 남성 세입자는 "경찰의 기습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곳곳에 치명적인 방어장치를 해뒀다"고 경고했다. 망루가 세워진 3층 단독주택 주변에는 폐가구 등으로 방어막을 쳤고, 수돗물을 계속 틀어놔 온통 빙판이 됐다. 한편에선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데 대해 "인사철을 앞두고 탈없이 임기를 넘기려 몸을 사리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배경과 전망='고공 농성'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6월. 낡은 단독주택 밀집지였던 일대 2만4천여평을 6개 건설사가 사들여 아파트 개발을 시작한 직후다. 세입자 7백여명 중 대부분은 전.월세 보증금과 함께 별도의 이주비를 지급받고 떠났다. 그러나 당장 오갈 곳이 없던 20여명이 대책위를 세우고, 영구임대 주택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철거민연합'이 개입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건설업체는 "민간업체의 아파트 개발에서 임대주택을 달라는 건 법적 근거 없는 막무가내식 주장"이라며 "소정의 보상금을 주겠다는 제안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파트 공사가 늦어지자 이주한 철거지역 주민 조합원 6백여명은 하염없이 준공만 기다리고 있고, 업체는 1천1백여세대의 분양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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