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눈앞이 캄캄 했던 이유 드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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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 노무현(당시 민주당 후보)대통령이 측근들의 비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썬앤문그룹 돈 1억원이 건네진 리츠칼튼호텔 일식당에 있던 '제4의 인물'이 그였다. 김해 유세에서 역시 썬앤문 돈 3천만원이 건네지는 현장에도 있었다. 소극적이지만 측근들에게 장수천 빚 해결을 지시했음도 나타났다. 도덕성에 타격을 받음은 물론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다음은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盧대통령의 당시 개입 상황이다.

◇돈 받는 현장에 두차례 참석=지난해 11월 9일 강남의 리츠칼튼 호텔 일식당. 盧후보는 이광재(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씨, 고교 후배인 은행 간부 金모씨, 문병욱 썬앤문 그룹 회장과 조찬 회동을 했다.

모임은 李씨가 文씨에게 대선자금 지원을 요청하자 文씨가 盧후보도 직접 만나고 싶다고 청해 이뤄진 자리였다. 盧후보는 그날 이른 아침부터 바쁜 일정이 있었지만 잠시 들렀다고 한다. 식사를 마친 盧후보가 먼저 자리를 떴다. 나머지 3명이 따라 일어서는 순간 文씨가 李씨에게 돈봉투를 건넸다. 그 안에는 1천만원짜리 수표 10장(1억원)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盧후보는 이들이 돈봉투를 주고받는 장면을 보지 못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李씨는 이후 이 수표를 안희정씨에게 건넸고, 安씨는 12월 27일 이를 현금화했다. 安씨는 "이 돈을 당원 연수비로 사용했다"고 검찰에서 밝혔다.

한달께 뒤인 12월 7일. 썬앤문 회장 文씨는 선거 유세차 영남지역으로 내려간 盧후보를 숙소인 김해관광호텔로 찾아갔다. 文씨는 아침 식사 중인 盧후보를 조용히 불러내 인사를 하고는 3천만원이 든 쇼핑백을 옆에 있던 수행비서 여택수씨에게 건넸다. 文씨가 돈을 건네는 장면을 盧후보가 직접 봤는지는 현재 명확하지 않다.

전날 부산에 내려온 文씨는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盧후보 후원 모임에 김성래 당시 썬앤문그룹 부회장과 함께 참석했지만 盧후보를 만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간 2천만원.3천만원짜리 쇼핑백 가운데 2천만원짜리를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장수천 빚 변제=16대 대통령 선거전의 열기가 불붙기 시작하던 지난해 7~8월 어느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안희정씨가 은밀히 盧후보를 찾았다. 盧후보가 투자했던 생수회사 장수천의 빚 문제 때문이었다. 강금원씨는 盧후보의 오랜 후원인이다.

한때 34억여원으로까지 불어났던 장수천 빚 문제는 당시 한나라당과 언론의 의혹 제기가 계속되면서 盧후보에게 큰 근심거리였다. 2001년 4월엔 장수천 빚 때문에 盧후보의 형과 盧후보의 운전기사였던 선봉술씨, 吳모씨가 공동 소유하던 김해시 소재 상가가 11억3천만원에 경매로 넘어갔고, 宣씨와 吳씨는 11억원을 돌려줄 것을 盧후보에게 요구해온 터였다.

급기야 盧후보는 지난해 5~7월 安씨와 최도술씨에게 빚 문제 해결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검찰 관계자는 "(盧후보가) 그해 5월과 7월에 두 사람에게 추상적인 형태이긴 하나 손해를 보전해 주도록 지시한 개괄적인 책임이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즉 강금원씨와 안희정씨는 장수천 빚 문제를 해결할 묘안을 가지고 盧후보를 찾아온 것이었다. 姜씨는 盧후보 후원회장이던 이기명씨가 소유한 경기도 용인 땅을 19억원에 사기로 계약하고 돈을 건넸으며, 이 돈은 장수천 빚 변제에 쓰였다.

그러나 땅의 명의이전은 이뤄지지 않았고 계약도 중도에 해지됐다. 그럼에도 땅값 19억원은 姜씨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이들은 "정상적인 땅 매매계약이었으며 계약을 해지한 것은 땅값의 변동 등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결국 '자금 지원을 위한 위장 거래'로 결론을 내렸다.

盧후보는 또 변호사 시절부터 사무장으로 함께 일했고, 당시엔 민주당 부산 선대위 살림을 맡았던 최도술씨에게 지방선거(지난해 6월) 잔금으로 보관하던 2억5천만원도 장수천 관련 빚을 갚는 데 쓰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대위 자금 횡령을 지시한 셈이다.

崔씨가 대선 빚 변제 명목으로 SK에서 비자금 11억원을 받은 의혹이 불거진 직후 盧대통령이 "눈앞이 캄캄했다"며 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강수.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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