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중립성」거론 가장 괴롭다”/지자제이후 업무급증(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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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관리­단속에 “하루가 짧다”/행패 예사… 사명감으로 버텨
『여보세요. 뭐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셔야죠.… 언론보도도 선관위 잘못입니까. 저희들,지금 매우 바쁘니까 제발 이런 전화좀 하지 마세요.』
10일 오후 5시 서울 인의동 중앙선거관리위원회 5층 상황실. 쉴새없는 전화벨소리. 상황반장인 유용호선거과장(51)이 한 시민의 화풀이성(?) 전화를 받으며 점차 목청을 높인다.
전국 1천8백22명의 선관위 공무원들은 요즈음 그로기 상태다.
야근으로 이어진 3개월간의 준비작업을 거쳐 돌입한 대선관리 비상체제가 20일 이상 계속되면서 육체적인 피로에다 스트레스까지 겹쳐 만성과로의 늪에 빠져 있다.
일선 구·시·군선관위는 2∼3명의 직원이 법정 선거관리사무뿐 아니라 불법선거운동단속까지 하느라 몸을 쪼개써도 모자랄 형편이고 중앙선관위 직원들도 밀려드는 고발·문의·일반사무 등의 처리에 24시간을 긴장으로 보내고 있다.
내무부 지방공무원들이 1만5천3백46개 투표구 선관위를 맡아 관리하고 단속업무에도 4천여명의 인력과 장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항상 일손부족이다.
그러나 신체의 피로보다 선관위 공무원들을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물리적·정신적인 폭행이다.
지난달 25일 선거벽보를 점검하던 마산 회원구선관위 직원 2명이 민자당원 3명으로부터 『네가 뭐냐』는 욕설과 함께 신분증과 카메라를 빼앗기고 폭행을 당했다.
또 지난 3월 총선때는 삼척에서 한 선관위직원이 선거가 끝난뒤 선거기간중 단속에 앙심을 품은 정당선거운동원으로부터 뭇매를 맞아 전치 6개월의 상처를 입었다.
일시에 집중되는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크지만 선관위의 권위와 직원들의 자존심을 긁어대는 공격(?)을 받고나면 일하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실 정도다.
『선관위의 중립성을 의심하는 시민들의 전화를 받거나 각 정당이 이해관계에 따라 선관위의 중립성을 문제삼을때 가장 괴롭습니다.』
윤원구선거계장(37)은 요즈음 후보들의 TV토론문제와 관련해 결정권이 없는 선관위에 대해 『누구편을 드느라고 성사시키지 않느냐』고 항의하거나 언론보도에 드러난 사례를 들어 편파관리라는 주장을 하는 시민들이 많다고 호소한다.
선거가 없는 기간에는 비교적 한가하게 지내다가 선거때만 되면 집중적으로 과중한 업무와 악성 스트레스가 쌓이는 선관위직원들은 신체의 적신호를 느낄 때가 많다.
최근 수년동안 선거기간에 고혈압이나 신경불안 등 건강이 갑자기 악화돼 퇴직한 직원이 20여명에 이르고 특히 91년 지방자치실시에 따라 선거관리업무가 배로 증가하면서는 근무중 숨지는 사례까지 나타나 직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91년 7월 서울 도봉을선관위 이용사무과장이 우편투표함을 발송하다 뇌졸중으로 졸도해 숨졌으며 지난 총선때는 전북 이리시 선관위 오형선과장이 선거마무리작업중 뇌일혈로 쓰러지는 등 2년사이에 7명이나 순직했다.
『아직은 풍토나 제도 등으로 볼때 선거를 홍역치르듯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만 선거혁명이라는 고지를 향해 사명감으로 뛰고 있습니다.』<이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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