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추가협의 양국 입장 차만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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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의가 양측의 입장 차만 확인한 채 22일 끝났다. 미국은 ▶추가협상은 30일 협정문 서명 전까지 마무리돼야 하고 ▶미국 측 추가협상 제안을 이유로 비자쿼터 허용 등의 추가 양보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협정문 서명과 미국이 요구하는 추가협상은 분리한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어떤 형태로든 협상의 균형이 유지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양측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30일 미국 무역촉진권한(TPA)이 만료되면 FTA 최종 타결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협상권이 행정부에서 의회로 넘어가기 때문에 개별 의원들의 법안 수정 요구가 잇따를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미 의회의 승인을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팽팽한 신경전=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는 "미국의 제안 내용은 협상의 균형을 깨는 것이 아니다"며 추가 양보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그는 "협정문 서명 예정일인 30일까지 추가협상을 마치기를 희망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추가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30일 서명도 연기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며 "중요한 것은 미국 의회 비준 동의를 위해서는 추가협상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도 30일 이전에 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 측 김종훈 수석대표는 "우리는 차분히 시간을 갖고 가는 게 좋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면서 "추가협상과 관계없이 서명식은 예정대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25일 국회 FTA 특위에 이번 추가협의 내용을 보고하고, 관계 장관 회의를 통해 대응 방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딜레마에 빠진 한국=겉으로는 '만만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 정부지만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미국의 강경론에 맞서다 자칫 30일을 넘겨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이 소멸될 경우 미국 국내 법률상의 문제로 한.미 FTA 타결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상 통상협상의 권한은 의회에 있다. 다만 TPA라는 법령을 통해 행정부에 시한부로 이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 TPA하에서 의회는 행정부가 가져온 협상 결과물에 대해 찬반만 결정하게 된다. 한.미 FTA에서 미 행정부의 이 권한은 30일을 기점으로 없어진다. TPA 권한이 없어지면 의원 개개인이 FTA 협정문에 대한 수정안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협정 타결이 매우 어려워진다.

양국 협상단이 '과속'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3월 말 타결에 성공한 것도 'TPA 시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추가협상이 30일을 넘겨 미국 의회의 관여가 이뤄진다면 한.미 FTA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간단치 않아진다. 미국 의회 내부에서는 자동차나 쇠고기 등 농산물 협상 결과가 자국 업계의 기대에 못 미친다며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입장을 전격 수용해 일주일 안에 추가협상을 마치기엔 한국도 부담이다. 이미 합의한 내용을 미국 사정으로 바꾸자면서 그것도 수일 내에 협상을 마무리 짓자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상 전문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의 입장을 덜컥 수용하는 것도, 서명과 추가협상을 분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면서 "결국 두 나라 최고위층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FTA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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