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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왜? 왜? 왜? 삼백스물다섯 번 … 머리에 쥐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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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구두끈은, 왜?

니컬슨 베이커 지음, 문영혜 옮김, 강, 216쪽, 1만원

'원숭이 엉덩이는 빠~알개' 로 시작하는 노래가 생각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설이다. 구두끈이 끊어진 한 직장인이 새 것을 사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1시간짜리 이야기. 줄거리를 말하라면 딱히 덧붙일 것도 없다. 어디가 절정일까, 무슨 사건이 벌어질까 기대하는 긴장의 끈을 놓아도 좋다. 그저 주인공 머릿속에서 생겨나는 '잡념의 샛길'을 따라가면 된다.

어느날 점심 시간을 앞두고 구두끈이 끊어진다. 요전날 다른 한쪽이 끊어졌는데 우연인가 싶다. "새로 하나 사야겠군" 혹은 "끈이 끊어진 걸 보니 이 구두 참 오래 신고 다녔나봐"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대개 여기까지다.

소설의 주인공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구두끈이 왜, 어떻게 동시에 끊어졌을까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끈을 맬 때마다 잡아당겨 생기는 '인장-마찰'의 탓인지, 걸을 때의 마찰로 마모되는 '보행-굴절'의 문제인지 삼백스물다섯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집요함을 보인다. 전자레인지로 튀기는 봉지팝콘에 감탄해 발명가를 찾아 전화까지 걸었던 그였으니까.

이뿐만이 아니다. '구두끈을 어디서 살까' 직장동료에게 물어보면서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끝내는 법'을 분석하고, 사무실을 나서기 전 화장실에 가서는 핸드 드라이어가 종이타월보다 비효율적인 갖가지 이유를 갖다댄다. 점심거리로 우유를 산 뒤엔 음료수 캔에 둥둥 떠오르는 비닐 빨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선 손잡이 고무벨트의 속도가 발판의 속도보다 살짝 느린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다.

이 모든 사유가 본문 안에 정리되기엔 너무 사방팔방이다. 그래서 논문보다 더한 각주의 향연이 펼쳐진다. 본문만큼 많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최대 5쪽), 이마저도 '에스컬레이터-스케이트 홈- 레코드의 마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제 버릇을 못 고친다. 이런 까닭에 본문을 먼저 읽고 각주를 읽든, 각주 지점마다 흐름을 끊든 독법의 일관성이 있어야 '샛길'에서 덜 헤맨다.

이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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