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소위 활동 거의 형식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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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5면에서 계속>개헌소위에 참여했던 원로 헌법학자 문홍주 박사(74)의 회고. 『당초 13명이던 소위원회는 전봉덕 위원장이 병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12명으로 줄었어요. 내가 전씨 대신 위원장 역할을 맡게되었습니다. 그전에 국회가 마련 중이던 헌법안을 기초로 각 조항을 하나씩 검토하는 식으로 작업을 했지요. 쟁점이던 대통령 임기조항에서 국회안은 4년에 1차중임을 허용하고 있었으나, 우리 소위에서는 단임제안이 우세했습니다. 단임제를 전제로 4∼8년까지의 임기를 검토했어요.

<신군부 뜻 간접 전달>
4년은 너무 짧고, 8년은 너무 길어 5년, 6년, 7년안이 중점 논의됐는데, 솔직히 말해 5, 6년으로 할 경우 이 사람들(신군부)이 또 욕심을 낼 것 같다는 우려가 많았어요. 작고한 권중돈씨(전 국방부장관)가 제의하더군요. 「7년으로 합시다, 그러면 4년 임기에 1차 연임을 한 기간(8년)과 비슷해지니 한번 더하려 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라고요. 다른 위원들의 의견을 물었더니 대부분 권 위원의 말에 동의하더군요. 그래서 7년으로 낙착된 겁니다.』
문 박사는 『개헌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신군부 사람들은 전적으로 소위에 맡겼지 압력을 넣거나 한 일은 없었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우병규(뒤에 청와대정무수석)·박철언(당시 검사·현 국민당의원)·이양우(뒤에 법제처장)씨 등 신군부측 전문가들이 우리집에 가끔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들의 의견을 개진하곤 한 일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기같이 지극히 민감한 사안에 대해 집권을 앞두고 있는 세력이 수수방관 했을리는 없다. 신군부측의 A씨는 『핵심세력 내부에서 80년 8월 초순.「6년 단임」이 합의되었으나 며칠사이에 7년으로 1년이 연장됐다』며 『누군가가 전두환 장군에게 강력히 건의해 전장군이 이를 수용, 밀어붙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합의 사항을 변경하기 위해 전두환·노태우·정호용 장군을 포함해 극히 핵심에 속하는 이들 수명이 따로 모임을 갖고 임기를 l년 연장키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권력의 생리에 비춰 볼 때 『개헌소위에서 자율로 결정했다』는 해석보다는 좀더 설득력이 있다.
당시의 신문보도들은 개헌소위의 활동에 대해 『현재 심의작업이 진행중인 헌법개정안의 대통령임기는 장기집권의 제도적 방지를 위해 6년 단임제를 채택한 것이 확실시된다』(8월12일자 석간신문)고 했다가 『대통령이 안정된 통치를 할 수 있게 하고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7년 단임제를 검토하고 있다』(8월17일자 조간신문)고 되어 있다. 얼핏 들어도 코에 걸었다가 귀에 거는 식의 논리전개였다.

<"올림픽 때 집권해야">
「6년안」이 보도될 때는 오스트리아·온두라스·이집트·레바논·핀란드·페루·멕시코·칠레·자유중국 등 6년 임기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들이, 「7년안」이 흘러나올 때는 「7년 임기제로 정국안정을 이루고 있는 선진국 프랑스」의 예가 들먹여졌다.
A씨는 또 『6년이냐, 7년이냐 하는 과정에서 11기 핵심들의 속마음은 각기 달랐던 것 같고, 또 허화평씨를 필두로 한 대령급 핵심들의 견해도 이들과는 달랐었다』며 『훗날 이들이 서로 갈등을 겪게 되는 연원도 굳이 따지자면 권력을 장악한 그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 가는 게 무리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나를 쏘아버리면 될 것 아니냐』는 전두환 장군의 일갈도 이 시점의 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임제 자체에 대해 전대통령은 임기 말에 이르러 많은 회의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나한테 건의도 했어요. 7년만 더 해달라고. 미국의 상원의원도 그랬고 올림픽을 책임진 사람도 올림픽기간중 대통령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어요. 헌법을 힘으로 뜯어고쳐 7년을 끌고 가느냐, 원래 약속한대로 단임으로 끌고 가느냐, 1년 전에 많이 고민했습니다 (87년11월27일 전대통령 발언-「전두환 육성증언」에서 인용).』
제5공화국 헌법개정안은 80년9월29일 공고됐고 국민투표를 거쳐 10월27일 공포됐다 헌법공고 직전인 그해 8월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은 개헌소위에서 일했던 위원 중 6명을 서울한남동의 요정으로 초대해 식사와 술을 대접했다.

<전장군 양주병엔 물>
당시 참석자 B씨의 증언.
『소위멤버 6명 외에 권익현씨 등 5공 주도세력 몇 명도 그 자리에 동석했습니다. 소위 멤버중 한 명이 전장군에게 농반진반으로 이런 맡을 하더군요. 「위원장님. 나중에 단임제를 괜히 택했다고 후회하지 마십시오. 나는 박대통령 때도 불려가 헌법안을 만든 일이 있어요. 그런데 한 3년이 지나니까 다시 불러 또 헌법을 고치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먼젓번 헌법이 잘못 만들어졌다고 막 야단치고 면박을 주는 겁니다. 위원장님이 지금 집권해 보지도 않고 단임으로 끝낼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는데, 아무튼 대통령 한번 돼 보십시오. 대신 뒤에 우리보고 머리 나쁜 사람들이라고 탓하지나 마십시오」라고 말입니다.』
B씨는 『이날 전장군은 참석자들과 함께 얼큰해지도록 마신 뒤 남들보다 일찍 자리를 떴다』고 말했다. 전장군이 자리를 뜬 뒤 그가 남기고 간 양주(조니워커)를 누군가가 마저 마시려고 자기 잔에 따랐어요. 그런데 그게 맹물이지 뭡니까. 우리는 진짜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전장군은 분위기만 잡으면서 물을 들이키고있던 거였어요.』
실제로 집권초기의 전두환 대통령은 편히 술마실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대단히 긴장하고 있었다고 당시 측근들은 전했다.<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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