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유세(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선주자들의 TV토론이 미정인채로 1일부터 TV유세가 시작되었다. 그뿐 아니라 후보들의 아픈 곳을 날카롭게 꼬집어 내기로 정평있는 관훈토론회도 1일부터 막을 열었다. 대선열기는 이제 유세장에서 안방으로 옮겨진 느낌이다.
현대를 「TV정치시대」라고 하는데 이의를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만큼 TV의 위력과 영향력은 크다. 그래서 입후보자들이 TV에 나와 자신의 정견을 발표하거나 정치선전을 하는 TV유세는 미국·프랑스 등에서는 60년대 이후 필수화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생소한 분야다. 유신이전인 71년 7대 대통령선거당시 선거법에 후보들이 TV를 이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했고,87년 13대대통령선거때 비로소 TV유세가 안방에 선을 보였다. 당시만 해도 각 후보들은 경험이 없어 미리 준비한 연설문을 읽어내려가는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번 TV유세는 다르다. 각 후보들이 방송국에 나와 마치 대입수험생들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한 모습으로 NG를 몇번씩 내며 녹화했다는 후문은 새삼 TV의 정치적 위력을 실감케 한다.
실제로 TV유세,또는 TV토론이 대통령선거의 판도를 바꿔놓은 예는 얼마든지 있다. 60년 미국대통령선거에서 무명의 케네디가 예상을 뒤엎고 닉슨을 꺾은 것은 바로 TV때문이었다. 레이건도 TV를 잘 요리한 사람중의 하나다. 그는 배우출신답게 분장과 제스처·화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현대를 「무관심의 시대」라고들 한다. 따라서 정치에 무관심한 많은 유권자들에 가장 효과적으로 후보들의 인물과 선거공약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TV유세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TV유세가 자칫하면 TV영상에 맞는 외향적 이미지,이를테면 용모나 화술만 가지고 대통령이라는 중요한 자리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부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맥 기니스라는 미국의 사회학자는 『대통령 팔기』(The Selling of the President)라는 책에서 대통령후보가 정보와 영상의 조작으로 과대포장되어 상품처럼 팔리는 현상을 경고했다. 요즘 각 후보들이 남발하는 「공약」은 대통령을 바겐세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손기상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