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3부] 가을 (8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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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림=김태헌

엄마도 분명 어린 시절에 겪었을 거면서 왜 이런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공부하라고 말하면 정말 딱! 그때부터 공부는 죽어도 하기가 싫었다. 그냥 나를 믿어주었으면 했다. -아니 믿어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냥 사랑해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내 쪽에서 먼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이 자랑이 아닌 것쯤은 나도 알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엄마 말대로 나는 나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있었다. 특별히 예쁘지도 않고 -물론 가끔은 거울을 보고 예쁘다 생각하고는 휴대전화에 달린 카메라로 내 얼굴을 찍어보고 흐뭇해한 때도 분명 있지만- 살은 교복 옆으로 자꾸 삐져나오고 체육이나 음악이나 미술에 특별히 재능도 없고 게다가 공부마저 못하는 데다가, 엄마 말대로 최선도 다하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라면, 세상 사람들이 다 뭐래도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이대로도 충분히 넌 사랑 받을 수 있어, 뭐 이런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말을 들으면 미안해서라도 공부를 할 텐데…. 처음에 내가 이 집에 왔을 때는 공부를 잘하는 거 바라지 않는다고, 그저 행복하라는 말을 그럴 듯하게 해서 날 감동시키더니, 그래서 나로 하여금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들더니, 인제 와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나자, 왠지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았고, 절대로 최선을 다하기도 싫어졌으며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될 좋은 핑계 거리가 생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눈물은 왜 나오는 걸까. 감정은 왜 하루에도 스무 번 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걸까.

엄마는 내 눈물을 보자, 휴지를 찢어 내게 건네더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울긴 왜 우니? 공부하면 되지."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당연한 말을 마치 좋은 충고인 것처럼 할 수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널 나무라자는 게 아니었는데 미안하다…."

엄마는 힘없이 말했다. 다시 눈물이 나왔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정말 나 자신이 형편없는 아이인 것 같단 말이야, 라고 대꾸하고 싶었는데 그 생각을 하자 슬퍼졌던 것이다. 아니, 실은 내가 정말 형편없는 아이여서 형편없는 어른으로 자랄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엄마 친구들이 자꾸 전화를 해서 널 그렇게 놔두면 안 된다고…. 나도 잘 모르겠어.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건지. 애들 문제는 정말 모르겠어."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둥빈이 초등학교 1학년 입학했을 때, 그때만 해도 촌지라는 게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할 때였는데, 엄마는 생각했지. 난 그런 거 안 해. 난 참교육 정신에 입각해서 절대로 우리 아이에게 그런 거 안 해, 하고. 경험 있는 엄마 친구들이, 충고하더구나. '참교육도 좋지만, 네 아이만 피해볼 걸. 네 아이 피해보고 나면 사회가 정의로워지면 뭐 하니? 결국 네 손해야…. 눈 딱 감고 다른 데서 돈 아껴서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가져다 드리고 바쁘더라도 자주 찾아가서 얼굴 도장 찍어.' …엄마 그렇게 안 했어. 두 번 인사 가고 말았지…. 둥빈이 학교 가서 첫 여름방학 과제가 일기 쓰기 하나였는데 싫다는 둥빈 붙들고 정말 열심히 일기 쓰게 했었어. 그런데 둥빈이 나중에 말하더라, 엄마 애들 다 일기 쓰기 상 받았는데 매일 쓴 사람 중에 나만 못 받았어…. 선생님 찾아갔지. 선생님 매일 쓰는 아이에게 주는 상이라면 저희 둥빈이도 주셔야 되는 걸로 아는데…. 기준이 달랐나요? 그때 둥빈 담임 선생님이 너무나도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하더구나. 다 써온 애가 한둘인가요? 얼마나들 잘 썼는데요. 엄마들이 일기장에 꽃잎 넣어서 코팅까지 해서 보냈어요…. 성질 같아서는… 아니 엄마들이 코팅한 건 엄마들 상주고 아이가 한 건 아이 상이잖아요? 규정이 매일 쓰는 거지 잘 쓰는 게 아니었잖아요,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못했어…. 더 불이익 갈까봐. 위녕 엄마 친구들이 너 고액과외라도 시키래. 빚을 내서라도 시키래. 족집게 과외, 명사 과외…. 과목당 한 달에 이백만원이라나? 더한 것도 있다나…. 그것도 연줄 있어야 들어간다나…. 대학 갈 때까지 수천 쓸 생각해야 부끄럽지 않은 데 보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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