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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박물관 기획展 31일부터…甲申年 "잔나비 납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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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004년 새해 갑신년(甲申年) 원숭이의 해를 맞아 오는 31일부터 내년 2월 9일까지 '갑신년 잔나비 띠' 기획전이 열린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홍남)이 주최하는 이번 전시에는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청동제십이지추'를 비롯해 총 40여점에 이르는 12지(十二支) 및 그 중 하나인 원숭이 관련 유물이 선보인다.

원숭이의 별칭 혹은 옛말인 잔나비는 '재다'('날쌔다'라는 뜻)라는 동사와 '납'(원숭이)이라는 명사가 합쳐진 것이다. 원숭이의 날렵한 이미지는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빠르고 날렵한 이미지는 동시에 어리석거나 덜렁댄다는 느낌도 준다. 가령 도토리를 아침에 세개, 저녁에 네개 준다고 불평하던 원숭이에게 아침에 네개, 저녁에 세개 준다 했더니 좋아하더라는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재주는 많고 영리하지만 진중하지는 못한 원숭이의 습성을 담고 있다.

또 원숭이 '후()'자는 제후 '후(侯)'자와 발음이 같아 그림이나 문방사우 등에 표현된 잔나비는 제후, 곧 높은 벼슬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것으로 통했다.

그런가 하면 원숭이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인간적인' 면모로 기록되기도 한다. 사람에게 붙잡힌 자식 때문에 애가 닳아 죽어버린 원숭이 어미의 이야기, 자신을 아껴주었던 주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함께 죽은 원숭이의 이야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공(時空)의 의미에서 풀면 이러하다. 원숭이의 시간인 신시(申時)는 오후 3시에서 5시까지로 요즘같은 겨울철에는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고,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의 퇴근시간이었다. 방위를 십이지로 표기할 때 신(申)은 서남서(西南西) 쪽으로 원숭이는 그 방향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다양한 의미로 우리 전통문화 속에 녹아있는 원숭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출품작 중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인 원숭이탈(근대.사진)은 봉산탈춤에서 신장수를 조롱하는 역할을 하는 원숭이를 묘사한 것이다.

장서각 소장의 '시헌서'(時憲書.1894년)는 1백20년 전인 갑신년(甲申年) 관상감에서 발간한 책력으로 연월일에 간지를 병기하고 있다. 전통시대 갑신년을 달력을 통해 되돌아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1896년)은 먹이를 탐하다 덫에 걸린 원숭이의 예를 통해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적고 있다. 경주의 김유신묘에서 12곳 각 방향을 맡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12지 동물상 탁본도 볼거리가 될 전망이다. 한양대박물관 소장 '철제은입사함'(조선 후기)에는 원숭이가 복숭아를 따 먹는 도안이 묘사돼 있다. 02-734-1346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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