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리칸 드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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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민족이 최초로 하와이에 공식이민한 것은 1902년 10월2일로 기록되어 있으나 후에 하와이 이민국에서 발견된 자료에 따르면 1890년대 말에도 상당수의 한인들이 하와이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1888년 6월 일본이민회사 직원들에 의해 한반도에서 자행된 납치사건의 희생자들로 추정되었다. 모두가 10세 안팎의 어린이였던 이들은 일인들에 의해 하와이 설탕재배회사에 팔려간 것이다. 이들이 성장하여 공식적으로 이민한 동포들과 함께 하와이 한인사회를 형성하면서 1910년이후 민족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샌프란시스코의 중국총회에 유지비를 보냈고,상해임시정부에도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을 상대로 총칼을 들고 싸울 수는 없을지언정 그밖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자세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조국독립이라는 「정치적」 명제는 경제적 성공과 함께 극히 절실한 과제였다. 그들에 비하면 62년 해외이주법이 발효하면서 삶의 터전을 미국으로 옮긴 이민1세대들에게는 「정치적」 목표가 없었다. 설혹 정치적 야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역시 경제적 성공을 거둔 후의 일이므로 힘든일,궂은 일 마다않고 오직 억척같이 일에만 몰두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큰 재산을 모은 이민1세대들도 많아졌고,그들중 정치적 목표를 가졌던 사람은 이제 그것을 실현하는 일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 징후가 지난번의 미국선거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연방하원의원에 당선한 김창준씨 외에도 입양아출신의 미미 앤드루씨가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이 된 것을 비롯,5명의 교포가 주 상·하원과 주의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또 전쟁고아였던 이송준씨가 조지아주 컬럼버스시 경찰국장으로 당선됐다. 뿐만 아니라 내년초 출범할 클린턴행정부에도 여러명의 교포가 차관보·국장급 등 고위직에 발탁될 전망이라고 한다. 정계에 진출하고 고위직을 맡는 것만이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지난 4월말의 LA사태가 보여주듯 한국교민의 정치적 소외현상도 그 원인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면 교민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하리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더구나 그들이 한미양국간의 현안문제에도 조국을 위해 한몫 거든다면 금상첨화인 셈이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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