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어린이책] 난 떠든 적 없는데 왜 단체 벌을 받아야 하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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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내가 왜 벌을 받아?

클로드 귀트망 글, 토마 바 그림, 김영신 옮김

큰북작은북, 48쪽, 8000원, 초등 3학년 이상

프랑스 철학자 알튀세에 따르면 학교는 단순한 배움의 장소가 아니다. 매스컴, 교회(프랑스의 경우다)와 더불어 기존 사회체제를 지키고 가꿀 일꾼들을 키워내는 곳이다. 실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정해진 시간의 등하교, 교복 착용 등 습관처럼 따랐던 규범이 우리 삶에 더 영향을 준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당연히 순기능과 역기능을 하게 된다. 그 역기능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단체 벌이다. 수업시간에 떠들었다고, 학급에서 누군가 금품을 잃어버려 범인을 찾는다고, 학급성적이 떨어졌다는 등의 이유로 학급 전체가 벌을 받은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테다.

프랑스 작가가 쓴 이 동화는, 우리 대부분이 아무 생각 없이 견뎌냈던 단체 벌의 부당함에 관해 생각하게 만든다.

초등학생 줄리앙이 단체로 벌을 받게 됐다. 반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뛰며 시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 온 줄리앙은 자기는 벌 받을 이유가 없다고 믿는다. 선생님도 줄리앙이 쉬는 시간이 끝날 때 교실에 들어온 걸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벌을 받아야 하느냐"며 "말도 안 된다"고 항의하는 줄리앙에게 벌을 받으라고 강요한다. 찬찬히 설명해 주지도 않고 "단체로 받는 벌이니까 너만 쏙 빠질 수는 없다"며 밀어붙인다.

교실 뒤에 가 있으라거나 반성문을 쓰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거부하는 줄리앙. 붉으락푸르락 해진 선생님은 줄리앙을 교장실로 데려간다(이 점은 우리 현실과 다르다). 교장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겁을 먹고 코를 훌쩍거리는 줄리앙의 말을 들으려고도 않는다.

"선생님이 벌을 준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선생님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학생한테 벌을 주지 않아요. 다 너희들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 선생님은 너희를 사랑해. 줄리앙, 그건 너도 알고 있지?" 이렇게 타이르면서 다음날까지 반성문을 써오라고 다짐을 받는다.

원치 않는 방식의 사랑이 버거운 줄리앙은 우군을 발견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단체로 벌을 받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해온 아빠가 학교로 찾아가 직접 따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줄리앙은 아빠가 선생님께 뭐라 할지 걱정되어 밤 깊도록 잠들지 못하고….

다음날 아빠는 교장선생님과 선생님을 만나 단체 벌의 부당함에 관해 한바탕 연설을 하고는 "어른도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요? 아이들은 어른의 행동을 보고 배우니까요"라고 주장한다. 교장 선생님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사과하고 선생님은 눈물을 글썽인다. 여기에 아빠가 "줄리앙이 잘못하면 언제든 따끔하게 야단쳐 주세요"라고 양보해 단체 벌 거부 소동은 행복한 화해로 마무리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기 위해, 그리고 다수나 권위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지킬 용기를 키워 주기 위해 읽힐 만한 책이다. 단 어른들의 배경 설명이 더해지면 효과가 크겠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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