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인 나타나면 법정싸움 전망/행방묘연 백50억어음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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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특정횡선」찍혀 지불의무 없다 상은/부정유통 됐다면 이 지점장 책임 법조계
자살한 상업은행 이희도명동지점장이 롯데쇼핑에 대출해주면서 받았다는 3백억원 보증어음중 행방이 묘연한 1백50억원 어음은 어떻게 처리될까.
김추규상업은행장은 18일 자체검사 결과 발표를 통해 이 지점장이 빼돌린 금액 8백56억원중 간곳을 알 수 없는 롯데쇼핑 어음 1백50억원에 대해 조만간 분실신고를 낸후 어음의 무효를 인정받기 위한 제권판결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음소지인이 나타나 권리를 주장할 때는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말해 이 지점장 자살사건은 법정으로까지 비화될 전망이다.
상업은행이 다른 돈은 모두 물어주겠다고 하면서도 유독 이 부분에 대해서만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것은 이 어음에 은행이 수납을 하고 더 이상 유통될 수 없다는 표시인 「특정횡선」이 찍혀 있어 소지인이 어떤 경로로 이 어음을 얻게 됐건간에 은행의 지불책임이 없다는 논리에서다.
고객이 은행에 가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꿀때 은행이 일단 지점이름이 박힌 특정횡선 도장을 찍어 수표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특정횡선」이 있는 어음이 과연 유통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현행 어음법에 명확한 규정이 없다. 또 이 경우에 딱부러지는 기존의 판례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유통될 수 없다는 단서가 어음에 표시되어 있을 경우 유통을 거쳐 마지막으로 인수한 사람이 지급을 청구할때 지급인이 이를 거절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문제의 보증어음에서 지급인은 롯데유통이기 때문에 상업은행과 어음소지인 사이의 시비에 이 조항이 적용될 수는 없다.
법률전문가들은 따라서 상거래 관행상 유통이 될 수 없는 이 어음이 유통됐다면 이를 돌린 이 지점장과 이를 인수한 사람중 누구의 책임이 우선하느냐가 이 소송의 관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단 부정유통이 됐다면 이 지점장이 사용자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게 법조계 다수의 견해다. 즉,어음소지인이 이 어음이 유통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사들였다고 해도 이를 판 이 지점장의 행위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어음소지인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여기서 전제돼야 할 것은 이 어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유통됐느냐다. 시중에 나도는 여러가지 시나리오중 하나처럼 예컨대 이 지점장에게 예금을 들어준 전주가 협박 등을 통해 어음을 강제로 받아두었다면 「선의의 취득」으로 볼 수 없어 상황이 달라진다.
금융계에서는 1백50억원 보증어음을 받은 사람이 속성상 신분을 밝히기 꺼리는 사채업자로 추정되는 만큼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나타난다면 소송과정에서 이 지점장의 방만한 자금운용 행태와 자살에까지 이르게된 동기 등 의문점의 상당부분이 실체를 드러낼 전망이다.<이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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