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제일주의 인사 개선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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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업은행의 금융사고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명동지점장이 불법 또는 편법으로 빼돌린 자금이 1천억원대로 추정되어 시장의 불안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우리는 금융당국이 어째서 사채 중개창구로 전락한 은행의 업무행태에 대해 계속 방관해 왔는지를 엄중히 묻고 싶다. 결국 정부가 지금까지 강조해 왔던 금융제도 개선은 빈 껍데기였던가. 은행의 예금실적쌓기 경쟁에서 빚어졌던 양도성예금증서의 불법유통은 금융기관이 제1의 생명으로 하는 신용체제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말았다. 과연 은행은 믿을만한 곳인가하는 의문마저 들게 됐다.
우리가 더욱 개탄하는 것은 이번 사고가 명성사건 당시 상은의 한 대리가 수기통장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고금리를 보장해주며 돈을 끌어들이는 지난 84년의 수법으로 되돌아갔다는 점이다. 이러한 편법이 또 다른 은행에도 있으리란 개연성을 금융인 스스로가 인정할 정도다. 수신경쟁에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방법인들 사양할 수 있겠느냐 하는 반응이 오늘의 금융현실이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 고객들은 지점장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그처럼 공금리와 실세금리와의 차액을 메워줄 수 있으며 또 개인의 필요에 의해 수백억원대의 고객예금을 본인의 동의없이 마음대로 이리저리 빼 쓸 수 있는 금융계의 마술사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은행의 지점장이나 간부들도 예금 끌어들이기 경쟁에 그같은 「수완」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자리를 버텨나갈 수 없는 금융제도와 인사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서는 동일한 유형의 비리는 재발될 것이다. 수신싸움에서 벌어지는 금융기관의 부작용은 여러가지 형태로 은행의 부실화를 재촉했고 기업과 금융사이의 또다른 부조리를 낳았다. 예금시장은 한정되어 있다. 어느 은행이 더 많은 예금을 끌어들이고 어느 지점장이 선점할 수 있느냐는 결국 편법·불법적인 관행으로 더 많은 금리를 챙겨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은행원의 업무평가가 주로 수신실적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현재의 인사제도는 좀더 포괄적인 금융서비스의 개선과 고객의 편익을 도모하는 상품개발 등에 맞춰 고쳐져야 한다.
선진국의 금융개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금융부문의 대외개방과 단계적인 자본시장 자유화조치를 취하고 있다. 정부는 은행의 여신과 내부경영에 대해 부분적인 규제완화책을 마련해 왔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늉에 불과했다. 금융제도의 하드웨어 보다는 자유화에 걸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은행을 이끌어야 한다. 당국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면서 과도한 수신경쟁과 부당한 관행을 계속 묵과하는 것은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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