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조'보상공화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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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보상금으로 수십억원씩 타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00억원 이상 수령자도 적지 않고요. 돈이 돈이 아닌 느낌입니다."

한국토지공사에서 토지보상금을 담당하는 한 중견 간부의 이야기다. 행정중심복합도시청 관계자도 "돈벼락 맞아 팔자 고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며 "요즘 공주.연기에 와서 돈 자랑하다간 바보 취급 받는다"고 전했다.

토지보상으로 한몫 잡은 사람들은 또다른 투자 대상 물색에 한창이다. 지난해 6월 행정도시 보상금 20억원을 받은 정모(44)씨는 서울 서초동의 아파트에 7억원을 묻었다. 올해 초 인천 영종지구에서 보상금 30억원을 탄 김모(63)씨는 자녀 세 명에게 5억원씩 증여한 뒤 남은 돈으로 송도 신도시 상가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앞으로 3년간 매년 20조원 이상씩 토지보상금으로 풀린다. 부동산 시장 불안의 뇌관으로 지목된다. 단국대 조명래 교수는 "토지보상금이 연간 예산의 7~10%에 이를 만큼 '보상금 공화국'이 돼버렸다"고 진단했다. 부동산컨설팅업체인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토지 보상으로 인생 역전을 노리는 '로또 심리'가 퍼질 경우 또다시 부동산 불패 신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토지보상금만 110조원=노무현 정부의 각종 개발 사업으로 인한 토지보상금은 11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17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2003~2007년 5년간의 토지보상비는 87조1000억원. 이 가운데 김대중 정부에서 계획된 2003년(10조원)과 2004년(16조2000억원)의 보상비를 빼고, 앞으로 집행할 혁신도시.동탄2 신도시 등 2008~2009년(매년 약 25조원씩)의 토지보상비를 더하면 현 정부의 개발 정책에 따른 토지보상액은 110조원을 웃돌게 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2002년까지 토지보상비는 연평균 7조~8조원 수준이었다. 현 정부 들어 10조원을 뛰어 넘은 토지보상비는 지난해 20조원을 돌파했다. 토지보상비는 노무현 정부의 개발 사업이 마무리되는 2009년까지 해마다 20조~30조원씩 더 풀릴 예정이다.

◆보상금의 96%가 현금 지급=지난해 지방자치단체.지방공사까지 포함한 토지보상 규모는 23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건교부는 이 중 채권 보상은 1조원가량에 그치고 나머지 22조6000억원을 현금으로 보상한 것으로 추정했다. 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내준 토지보상금 16조5000억원만 봐도 채권 보상은 4.2%(7500억원)에 불과했다. 주택공사는 7조원의 보상금 중 고작 1.6%(1100억원)만 채권으로 지급했다.

정부는 지난해 3월부터 1억원 이상 보상 받는 부재지주에 대해 1억원 초과분은 의무적으로 채권으로 보상하고 있다. 현지인도 원할 경우 채권 보상이 가능하도록 법을 고쳤지만 현금 보상을 선호하는 현상은 요지부동이다. 보상금을 은행에 맡기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은 행정도시.김포에서 시범 실시되고 있을 뿐이다.

건교부는 그동안 "현금 대신 채권 보상을 늘리고, 은행에 맡기면 상업용지를 우선 공급받기 때문에 현금 지급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현급 지급률이 96%에 이르고, 보상비의 40%가 수도권이나 해당 지역의 알짜 부동산 구입에 쓰였다는 현지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건교부 답변이 무색해졌다.

◆뒷북 대책=건교부는 지난해 12월 현금 대신 사업지구 내의 땅으로 보상해 주는 '대토(代土) 보상'을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토지보상법 개정안은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의가 늦어지면서 오는 21일에야 국회 건교위에 상정된다. 당초 2월 국회 상정, 3월 시행에서 한참 늦어졌다. 건교부 최정호 토지정책팀장은 "정치권도 대토 보상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며 개정안 통과를 낙관했다. 하지만 정치권이 분열돼 건교부의 기대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세종대 변창흠 교수는 "현 정부가 균형 발전을 내세워 행정도시.혁신도시.기업도시를 쏟아낼 때부터 토지보상금의 부작용은 예고됐다"며 "미리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데 때를 놓친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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