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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천사 공동체 '젬마의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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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25일 오후 6시 서울 화곡동 '젬마의 집'(gemmahome.com)에선 기도 시간을 알리는 시계종이 울렸다. 20여명의 어린 아이가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아 각기 마음 속 소망을 빌었다. 스피커에서 나지막하게 울려퍼지는 '성모송'을 함께 외우며 아기 예수의 평화를 빌었다. 거실 한 구석에 서 있는 성모상이 이 어린 천사들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환한 불빛도 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비쳤다. "24일 저녁 성탄 미사를 올렸습니다. 외부 신부님 두 분이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셨어요. 미사를 올리고, 음식도 나누니 성탄절을 느낄 수 있었어요. 불황 때문인지 후원자가 뚝 끊어졌거든요. 찾아오는 사람이 지난해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강경자(세례명 젬마.42) 원장의 말이다. 지난 20여년간 어려운 아이들과 동고동락한 그는 "옛날에도 많이 힘들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아이들을 굶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사마저 없었다면 아이들이 정말 쓸쓸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섯살부터 중학생까지 고루 모인 아이들은 전혀 구김살이 없었다. 언니들은 동생들의 식사.숙제 등을 보살펴주고, 동생들은 언니들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가톨릭 사회복지단체인 젬마의 집은 '정상' 가정을 이룰 수 없는 아이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이다. 부모를 잃었거나, 한쪽 부모가 없거나, 혹은 부모가 있어도 보살필 능력이 없는 집 아이들이 한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오직 후원자들의 정성으로 운영된다.

강원장은 지난 세월을 '기적'에 비유했다. 그간 크고 작은 기적이 많았으나 그중 가장 큰 기적으로 지난 6월 3층짜리 새집을 지은 것을 꼽았다. 국민은행의 사회사업 기금과 주변 성금을 합쳐 번듯한 둥지를 마련했다.

"예전만 해도 정말 난리통이었어요. 겨울엔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으로 단층 살림집이 가득 찼습니다. 화장실도 하나밖에 없어 기상 시간엔 자기 옷에 '일'을 보는 아이도 있었지요. 3년 전부터 '큰 집'이 필요하다고 아이들과 함께 매일 기도했는데, 그 소망이 이뤄어졌어요."

그는 이 대목에서 '대단한 모순'을 지적했다. "새집을 짓고 나니까 후원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우리가 '부자'가 되었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외양만 보고 판단하는 거죠. 사실 아이들이 양호한 환경에서 자라는 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긍정적인 인생관을 키우려면 환경이 중요하듯, 이곳 아이들도 좋은 조건에서 살 권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선 돈이 있어도 새집을 짓지 못하는 복지시설이 많습니다. 주변 시선이 두려운 거죠. 지금은 겉만 가난해 보이는 곳을 도와주는 시대가 아닙니다."

평생 독신으로 아이들을 보살펴온 그는 젬마의 집을 '하느님의 집'이라고 표현했다. 하느님이 어린 아이들을 항상 돌봐줄 것이라는 믿음에 흔들림이 없었다고 밝혔다.

"특별한 사명의식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 집 식탁에 항상 거지를 초대했던 아버님에게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또 눈이 멀고 병이 들었으면서도 나환자들의 자녀를 돌보신 벨기에 출신의 파레이몬드 신부님의 권유가 결정적이었어요. 고교 졸업 후 '일 좀 도와달라'는 신부님의 요청에 생각없이 응한 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신부님이 은퇴하신 1997년부터 제가 꾸려가고 있어요."

강원장은 '내 아이, 네 아이'의 구분을 경계했다. "이곳 아이들도 크면 사회로 나갑니다. 모두 함께 어울리는 것이죠. 일반인도 '모든 아이는 내 아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어차피 더불어 사는 사회잖아요."

그의 꿈은 '주는 것을 아는 아이'다. 받기에만 익숙한 아이들에게 남들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최근 몸이 불편한 장애아들에게 젬마의 집 아이들의 장구 실력을 보여주었다. 새해 정월 13일엔 후원자들을 초대해 작은 음악회도 열 예정이다.

지금까지 고등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독립해 내보냈으나 앞으론 대학교에 진학시킬 뜻도 있다.

"무슨 돈으로 하냐구요. 지금까지 하느님이 다 들어주셨는데요, 뭘." 02-2690-8461.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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