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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키즈] '한국사 편지 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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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편지가 날아왔다. 마지막 편지라고 한다. 딸 세운이에게 균형잡힌 역사 지식을 알려주려고 한 엄마 작가가 쓰기 시작한 '한국사 편지'에 관한 이야기다.

박은봉씨는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는 역사 저술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에게 들려주는 마음으로 '한국사 편지-원시 사회부터 통일 신라와 발해까지'라는 책을 낸 후 3년 만에 '한국사 편지'를 완간하게 됐다. 5권에 담은 편지는 모두 열일곱 통. 열한 통은 식민지 시절 이야기며, 여섯 통은 8.15해방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다루고 있다.

엄마는 중명전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는 경운궁의 중명전이야. 을사조약이 이곳에서 맺어졌지. 경운궁이 마구 잘려 나가는 바람에 중명전은 지금 궁궐 밖에 서 있지만, 원래는 이 근처가 모두 경운궁이었단다"며 5권의 첫 편지를 시작한다. 일제 강점기를 주로 다룬 만큼 흥분을 가라앉히고 편지를 쓰기란 쉽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전작에서 "일본에 우리 문화를 전수했다고 우월감을 가져선 안 된다"고 했을만큼 균형잡힌 시각이 이 책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조선의 안녕과 보호를 위해 당분간 외교권을 일본에 맡기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이토 히로부미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내용은 협박이나 다름없었던 을사조약, 재일 조선인들을 마구 죽이는 악몽을 낳았던 관동대지진을 가감없이 설명한다. 대한제국 대신들 중 을사조약에 찬성하고 반대한 인물의 면면, 관동대지진 학살의 주범은 "조선인들을 조심하라"는 내용의 전단을 뿌린 일본 정부였다는 점 등을 사진을 곁들여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울분을 토할 일을 전하면서도 "그때를 잊지 말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판단의 근거가 될만한 자료는 많이 알려주되 역사에 대한 판단 자체는 아이들 몫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배려다. 또 교과서에서는 알 수 없었던 민초들의 '숨은 역사'도 등장한다. 양반 의병장 유홍석의 맏며느리인 윤희순은 '안사람 의병단'을 만들어 남자 의병과 똑같이 훈련받았으며, 어린 처녀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신랑감의 사진만 보고 이역만리로 결혼하러 떠났다고 일러주고 있다.

작가는 마지막 편지의 의미를 이렇게 전했다. "이번 책은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와 아빠, 그리고 세운이로 이어지는 시간의 역사란다. 즐겁고 신나기보다는 슬프고 답답한 일이 많았을거야. 엄마는 이 책이 세운이가 과거에서 현재로, 또 미래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깨닫는 데 쓸모 있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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