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전면전 “초읽기”/미­EC 무역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농민보호·자존심 걸려 배수진/타협 안될 경우 “불똥”전세계로
미국이 5일 백포도주 등 EC(유럽공동체)산 일부 농산물에 대해 2백%의 보복관세 부과계획을 공식발표함에 따라 농업보조금 지급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온 미국과 EC가 무역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미국이 발표대로 다음달 5일부터 초고율의 보복관세를 물리게 될 경우 EC 또한 미국산 상품에 대해 마찬가지의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 확실시 됨에 따라 앞으로 남은 몇주동안 양측간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미·EC간의 전면적인 무역전쟁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한줌의 해바라기씨」가 이번 위기의 직접적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85년부터 미국은 해바라기·대두 등 유지작물 재배농가에 대한 EC의 부당한 보조금 지급으로 미국내 유지종자 재배업자들이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EC측에 보조금 지급중단과 생산량 감축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그러나 EC는 역내 농가보호를 구실로 보조금 지급을 계속함으로써 이 문제는 양측간의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타결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이 돼왔다. 연1천2백만t에 달하는 생산량을 7백만t으로 줄이라는 미국측 요구에 대해 EC는 지난 6월 타결된 EC의 공동농업정책(CAP) 개혁에 따라 예상되는 생산량 감소범위 이상은 절대 불가능 하다고 맞서 UR협상은 막바지 단계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한채 답보상태가 계속돼 왔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지난달 부시행정부가 농산물 문제에 대해 다소간의 양보의사를 비치면서 EC측에 협상을 요청해옴에 따라 UR협상의 연내타결을 목표로 한 양측간의 마지막 협상이 활기를 띠는듯 했다. 이 협상은 양측 농업장관간의 시카고 협상에 이르기까지 선거 하루 전인 지난 2일까지 계속돼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결국 유지종자를 둘러싼 소폭의 견해차를 극복하는데 실패,무역전쟁으로 치닫는 상황까지 가게된 것이다.
유지종자에 대해 미국은 당초 요구에서 다소 물러서 연9백만t까지는 허용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EC는 9백50만t을 마지노선으로 그 이상의 생산감축은 절대 불가능 하다며 더 이상의 협상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50만t의 해바라기씨 때문에 협상 전체가 깨진 셈이다.
유지종자에 관한 명분은 미국쪽에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지적이다. 미국은 이 문제로 EC를 이미 두차례나 가트(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제소한바 있고 그때마다 가트중재위원회는 미국측 주장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C가 협상에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 농산물 수출국인 프랑스의 거센 입김 때문이다.
UR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바라는 EC내 대부분의 나라들의 불만에 따른 고립위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UR협상의 조기타결에 완강히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은 적어도 내년 3월 총선까지는 타결을 늦추자는 의도가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CAP 개혁으로 이미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될대로 고조된 상태에서 미국 요구에 대한 일방적 양보로 비쳐지는 UR협상이 타결될 경우 농민들의 분노를 감당키 어려우며 이는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상황이라는게 사회당정부의 판단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이 1차 보복관세 부과대상 품목에 백포도주를 포함시킨 것이 프랑스를 겨냥한 것임은 물론이다. EC의 대미 백포도주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산 백포도주가 2백%의 보복관세 부과로 값이 3배로 오를 경우 프랑스산 백포도주의 대미수출길이 완전히 막히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미국이 계획대로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EC가 반격을 취한 것은 거의 확실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C는 이미 그 대상 품목선정 작업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미국산 철강·곡물·목재·연어·쇠고기 등에 같은 액수의 보복관세를 물린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분명한 것은 EC의 반격이 미국의 또 다른 보복조치를 몰고와 양측간 무역전쟁이 전면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에스컬레이트 될 거라는 점이다.
이렇게 될 경우 6년간 끌어온 UR협상 타결의 기대가 완전히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양측간 무역전쟁의 불똥은 전세계로 튀어 세계경기는 더욱 더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EC 모두 진심으로 이런 사태를 피하고 싶어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이 당장 보복관세를 물리지 않고 다음달 5일부터로 부과시기를 잡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때까지 남은 약4주의 기간은 세계가 무역전쟁으로 가느냐,아니면 UR협상의 극적타결로 가느냐를 판가름 하는 절대절명의 시간이 될 것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