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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뒤흔드는 “뜨거운 감자”/「간첩단사건」정치쟁점으로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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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인 연루설 무성… 민자·국민 공세/수세 몰렸던 민주 「정면돌파」로 역공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이 이번 대선에 엄청난 파란을 몰고올 조짐이다. 간첩단 1차수사 발표 이후 소문만 무성했던 정치인 연루설에 대해 민주당이 2일 국회예결위에서 본격 거론하면서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민주당대표의 비서 이근희씨가 국방부 자료를 간첩단에 넘겨준 것을 계기로 시작된 정치권의 간첩단사건 공방은 그동안 국방위와 국정감사,대정부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민자당은 이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경우 대선후유증이 적지않을 것으로 보고 일단 「중립내각과 민주당과의 관계」로 설정,방관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내심 대선에 미칠 득실을 저울질 하면서 정면쟁점화는 삼간채 틈나는대로 김대중 민주당 대표를 흠집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희태대변인이 그동안 김 대표의 국방위원 사퇴 등을 촉구한 것이나 2일 『민주당이 보안법 개폐를 주장하는 것은 간첩을 허용·고무하자는 뜻이냐』고 꼬집은 것이 한 예다. 박 의원은 3일 『정치권에 관련자가 있다면 자수해서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즉 민자당은 안기부의 추가발표가 있을 때까지 이 문제를 계속 건드려 김대중대표의 사상성 문제를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에게 깊숙이 심어놓겠다는 의도다.
국민당은 이북5도표 등을 의식,야권공조를 일찌감치 깨버리고 김대중대표를 민자당보다 더 앞장서 공격하고 있다. 정주영대표가 김 대표를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이자 민주당측은 정 대표를 『정서불안한 노인』이라고 되받아 치는 등 서로 인식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이 사건으로 대선에서 가장 큰 손실을 보고있다.
김대중대표는 자신에게 쏠리는 의혹의 시선을 의식,『주한미군은 철수해서는 안된다』『국방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며 국방예산도 삭감할 때가 아니다』고 하는가 하면 보안법 문제에 대해서도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을 묵인해주는 국가는 없다』고 국방·안보에 대한 보수적 입장을 피력해왔다.
이는 김 대표나 민주당의 과거 입장에서 크게 후퇴한 것으로 사상논쟁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는 안간힘이다. 3당이 정치특위에서 안기부법 개정문제를 유야무야 넘긴 것도 안기부에 대한 유화제스처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은 그러나 이 문제가 끊임없이 민자·국민당과 정부측에 의해 거론되자 2일 현승종국무총리의 발언을 계기로 정면돌파로 입장을 선회했다.
소극적인 방어자세만으로는 대선까지 견디기 힘들며 그럴바에는 차라리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판단을 내려 정면돌파해 쟁점화를 막아 보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민주당측은 2일 예결위가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하는 장이지만 앞으로는 총리나 정부를 상대로한 공세를 취할 기회가 없다는 인식하에 예산안 제안설명조차 듣기 전에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현 총리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현 총리가 2일 모일간지 인터뷰 기사에서 『간첩과 접촉한 정치인이 많은 것 같다』고 한 발언에 대해 유인학의원(민주)은 『특정정당과 후보에 대해 상처를 입히려는 공작정치가 아니냐』고 공식해명을 요구.
이에 현 총리가 『간첩들이 학계·언론계·정치권 인사에 대해 광범위하게 접촉했을 것이라는 뜻으로 아직 정치에 익숙하지 못해 오해를 일으켰다』고 사과성 해명을 했다. 이에 김봉조위원장이 현 총리를 퇴장토록 했으나 민주당의 이협·임채정의원 등이 거세게 항의하자 김 위원장은 서둘러 정회를 선포했다.
이후 민주당은 총리가 다시 출석해 명확한 답변을 할 때까지 실질심사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고수,5시간여의 정회끝에 총리가 다시 출석키로 하고 오후 5시부터 회의를 속개.
임채정의원은 질의에서 『간첩과 접촉했다는 뜻이 무엇이냐』고 묻고 『김영삼민자당총재의 측근중의 측근 K의원과 고위당직자 N씨,청와대 고위인사 K씨도 관련됐다는 소문이 있다』며 오히려 민자당과 청와대에 역공을 취했다. 이에 대해 문제의 K의원은 『정신 못차리고 뒤집어 씌우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정균환·임복진의원(민주)도 『야당과 재야에 6,7명 관련이 있다는 소문을 흘리는 등 대선을 비열한 게임으로 몰아가려 한다』고 비난하고 조속한 수사 결과 발표를 요구했다.
현 총리는 이날 밤 11시 넘어 국회에 나와 대기하다 국무위원들의 답변이 끝나고 예결위의 차수변경이 있은뒤 3일 0시40분쯤 나와 거듭 해명했다. 현 총리는 『인터뷰 발언에 어떤 의도나 목적도 게재돼 있지 않으니 믿어달라』『표현미숙으로 오해를 불러일으켜 거듭 죄송하다』『정부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며 「성실한」사과를 거듭했다.
현 총리는 특히 『총리로서의 인격과 70여년을 살아온 인생을 걸고 약속한다』며 『총리가 됐다고 살아온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달라』고 간곡히 호소해 새벽 1시10분쯤 회의가 종료됐다.
민주당측은 현 총리의 답변에 대해 「알맹이 없는 성실한 답변」으로 규정하면서 ▲중립내각 총리의 진지한 사과 ▲정치인이란 표현은 일반적 개념일뿐 국회의원을 지칭한 것은 아니라는 답변을 얻어낸 것을 성과로 평가했다.
더구나 이를 계기로 앞으로 정부측에서도 충분히 조심하지 않겠느냐는 계산도 하고 있다.
김대중대표도 이날 홍사덕대변인과 조승형비서실장,권노갑의원 등 측근들을 동교동으로 불러 대책을 숙의했으며 요로를 통해 정부측의 의중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문제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과 같은 위험성을 내포한 사안으로 대선기간동안 계속 민주당을 괴롭힐 전망이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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