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사립대 내신 1 ~ 4등급 동점화 방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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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일부 사립대 입학처장들은 13일 올 대입에서 고교 내신 성적(학생부 교과성적) 비중을 축소하려던 방침을 "없던 일로 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화여대.성균관대.연세대.한양대 입학처장들은 전날까지만 해도 "지역.고교 간 학력 격차를 무시한 내신의 변별력에 문제가 있다"며 학생부 1~4등급 모두를 동점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 김광조 차관보가 이날 "학생부 영향력을 무력화하려는 대학에는 재정 지원 불이익을 주는 등 엄정 대처하겠다"고 하자 말을 바꾼 것이다. 김 차관보는 브리핑을 통해 "일부 대학이 실질반영률을 낮춰 내신을 무력화하면 교육 현장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부 반영 비중을 높인 대학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어 (비중을 낮추는 곳은) 재정 지원 때 차등을 두겠다"고 못 박았다. 지원 조건에 "고교교육 정상화에 노력" 등의 조건을 달면 법적 근거가 없어도 제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학들은 처음엔 "간섭이 지나치다"고 했지만 교육부의 압박을 하루도 견디지 못했다. 연간 1조8000억원에 이르는 연구사업비 지원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서다. 주요 연구사업비는 현재 사업이 진행 중인 두뇌한국(BK)21, 학술연구조성사업, 수도권 대학 특성화사업과 지난달 신설된 인문학진흥사업 등이다.

◆돈으로 대학 길들이기=이날 이화여대는 비상이 걸렸다. 전날 황규호 입학처장이 "내신 1~4등급에 만점을 주고, 나머지 등급에 대해서는 각각 점수 차를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교육부가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대학 측은 결국 강혜련 기획처장 명의로 "2008학년도 교육부 입시 정책에 대한 이화여대의 입장"이라는 해명 자료를 냈다. "교육부의 입시 정책을 성실히 따르겠다. 내신 등급 논의는 대학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대입 문제 때문에 대학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연세대.성균관대.한양대도 '검토'에서 '유보' '공식 입장 아님'으로 물러섰다.

수도권 소재 7개대 입학처장과 이날 전화 통화를 한 결과 모두 "50%까지 내신 비중을 높이라"는 교육부 지침에 반대했다.

하지만 "연구사업비는 대학엔 생명줄 같아서 교육부가 돈으로 압박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A대학 입학처장은 "돈 때문에 입시도 마음대로 못하는 게 부끄럽다"며 "한번 불이익을 당하면 다음해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학생.교사들 혼란=올해 수능시험(11월 15일)을 5개월 앞둔 고3생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서울 양정고 3학년 이모군은 "3학년 2학기 내신 성적까지 반영되는 정시 모집에 지원할 예정인데 지원하려는 대학의 내신 반영 방법이 오락가락해 헷갈린다"며 "특히 대학별 실질반영률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친구들도 답답해한다"고 말했다.

부산 용인고 박만제 교사는 "교육부는 내신 비중을 50%까지 높인다고 하고, 대학들은 수능 위주로 뽑겠다고 하는 등 혼란스럽다"며 "수능 성적이 점수 표시 없이 등급(1~9등급)으로 바뀌는 올해는 제자 진학지도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고3 학부모 이진숙(서울 목동)씨는 "입시를 코앞에 두고 아직 내신 반영 비율을 정하지 못하는 대학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양영유 기자

◆학생부 실질반영률=대학의 입학전형 총점에서 학생부 성적이 실제 차지하는 비율. 전형 총점 100점을 기준으로 학생부 성적 40점, 수능 성적 60점을 반영할 경우 학생부 반영 비율은 40%다. 그러나 학생부 성적 산출 과정에서 40점 만점에 기본점수를 32점 준다면 최고 점수자와 최저 점수자의 차이인 8점이 전형 총점(100점)에서 차지하는 비율 8%가 실질반영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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