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단원 빅토르 천씨 구소 국립교향악단 내한 공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스베틀라노프가 지휘하는 국립교향악단과 함께 세계 거의 모든 나라를 가봤지만 아버지 나라의 땅을 처음 밟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려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한 다음에도 한참동안 기내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11월1∼2일 내한 공연을 갖는 구 소련국립교향악단의 유일한 한국계 단원인 바이얼리니스트 빅토르 천씨(43)는 『부모님도 일생동안 조국을 찾고싶어 무진 마음고생을 했는데 끝내 와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며 무척 감격스러운 표정.
남사할린스크 음악학교·림스크코르바스키고등학교·푸른즈음대를 거쳐 우즈베크국립교향악단 단원으로 4년간 활동한 그는 84년 구소련국립교향악단의 오디션에서 지휘자인 스베틀라노프를 크게 만족시켜 현재 9년째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련 음악가들이 가장 영예로 여기는 이 교향악단에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입단하게 됐을 때 아버지께서 「평생 소원을 풀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셨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그는 『아버지도 타슈겐트 근교에 있는 한인협동농장 경음악당의 지휘자로 일했던 음악가 출신』이라고 회고했다.
구 소련국립교향악단에 들어가자 단원들이 『도대체 어느 민족이냐』고 물어오는 등 설립 반세기만에 처음 등장한 한인음악가의 출현에 몹시 놀라워했다고 전한 그는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과 손님에게 예의 바르고 정중한 한국인의 미덕이 소련에 널리 알려진 후 단원들이 무척 부러워한다고 자랑(?)하기도.
한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가정교육을 통해 「민족의 뿌리를 잊지 말라」는 말을 계속 듣고 살아온 그는 그 때문인지 『러시아 내에서 한인의 위신을 높이는데 스스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소련 개방 이후 안트리오와 피아니스트 이경미씨의 연주를 러시아에서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고 말한 그는 『한국 음악가들의 수준이 무척 높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한마디. 그래서 이번 공연에도 청중들의 수준 높은 감상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본다고 말했다.
『소련붕괴 후 교향악단 연주회 수입의 증가로 음악가로서의 사회적인 지위뿐 아니라 물질적인 생활도 더 좋아졌다』는 천씨는 『한국말을 배우지 못한 것이 정말 한이 된다』며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고국에서의 음악활동도 하고싶다는 뜻을 밝혔다. <홍은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